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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다른 태극기 사랑 김달육 할아버지 “국기는 국가의 얼굴”
[전국] “국기는 국가의 얼굴이야.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난 태극기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참 못마땅해.”
김달육 할아버지(87세)는 96주년 3.1절 태극기 게양 의미를 묻는 말에 대뜸 역정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셨다. 이어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걸치고 다니거나 옷을 만들어 입는 것도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셨다.
접경지역 화천에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범 군민 시가지 캠페인’이 열렸다. |
지난 2월 26일, 강원도 화천군청 광장에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 범 군민 시가지 캠페인’이 열렸다. 참석자 모두는 어깨띠와 태극기를 받아 거리행진에 나섰다. 광복 70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열린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행사의 일환이다.
이 행사는 전국 지자체에서 자율적으로 진행했다. 민통선 이북마을 화천에서는 ‘전 주민 태극기 달기 촉구행사’에 이어 가두행진을 벌였다.
김달육 할아버지는 화천에선 특별한 어르신으로 알려진 분이다. 화천에 사는 사람 중 한국전쟁 당시 화천 전투에 참가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육군 하사로 임관해 소령으로 제대할 때까지 그는 한국전쟁의 산증인이었다. 당시 남한에는 발전소가 없었다.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을 위해 전기가 필수라고 여긴 정부는 서해안을 포기하고 화천발전소 탈환에 집중했다. 피아 10만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백암산 전투에서 화천발전소 탈환의 교두보였던 6.43고지를 제일 먼저 점령했던 사람이 김 할아버지다.
김달육 할아버지. 살아오신 인생의 깊이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신다. |
당시 소대장과 중대장을 지냈던 할아버지의 군복 상의 주머니엔 늘 태극기가 있었다. ‘고지를 점령했을 때 큰 나무에 태극기를 달면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해 연승으로 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때 총알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도 태극기를 보면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게야.”
이후 김 할아버지의 태극기 사랑은 남달랐다. 그의 집 대문엔 국경일이면 늘 태극기가 펄럭였다. 과거 어느 3.1절, 국기를 달고 난 아침나절, 할아버지는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20여 리는 족히 넘는 길. 2시간여를 걸어갔을 때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고 느낀 할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 집을 향해 뛰었다. 옷이 젖는 건 중요치 않았다. 집에 달아놓은 태극기가 젖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달육 할아버지는 한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았다. |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엔 국기를 내리는 시간이 있었어. 여름에는 오후 6시, 겨울에는 해가 짧으니까 아마 5시쯤 국기를 내렸지. 그때 애국가가 나오면 모두 행동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지.”
할아버님께서 나를 젊게 봐주신 것 같았다. 내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 아래에 연대급 군부대가 있었다. 할아버님 말씀처럼 그 시간만 되면 애국가가 앰프를 통해 흘러나왔다. 하얀 헬멧을 쓴 키 큰 군인 아저씨 세 명이 절도있는 자세로 국기를 내렸다. 애국가가 끝날 시간에 맞춰 국기를 하강하는 게 마냥 신기했다.
국기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마을 사람들은 행동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누가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 광경이 엄숙해서였을까. 쉰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도 당시 상황이 또렷하다. 국기가 내려질 때 바쁘다는 이유로 무심코 걷던 박 씨 아저씨는 마을 사람들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렸다.
“아들 셋, 손자 녀석들 다섯 모두 군대에 갔다왔어. 그러니까 우리 식구 중 남자들은 다 군대에 갔다온 셈이지. 난 애들에게 군대 가야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거든. 지들이 알아서 가더라고.”
대화 도중 할아버지는 은근히 아들과 손자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할아버지 전쟁사를 들으며 자라서였을까. . 해병대 출신 4명, 육군 출신 3명. 가족들 중 남자들은 모두 현역으로 병역 의무를 마쳤다. 할아버지는 ‘나라가 있기에 너희들이 있는 거다.’라고 수시로 강조하셨단다.
태극기와 다른 깃발을 같이 게양할 땐 법칙이 있다. |
“관공서에서조차 태극기를 달 줄 모르는 데가 많아. 태극기를 가운데에 놓고 세로 폭만큼 다른 깃발보다 올려 달아야 해.”
할아버지는 ‘국기법’이란 게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제15조에 국기와 다른 기의 게양 및 강하 방법이 명시돼 있다. 시행령엔 ‘국기와 다른 기를 같이 게양할 때에는 국기를 가장 높은 깃대에 게양하며, 게양하는 기의 수가 홀수인 경우에는 국기를 중앙에, 그 수가 짝수인 경우에는 앞에서 바라보아 왼쪽 첫 번째에 게양해야 한다.’고 돼있다. 김달육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하셨다. 사실 나도 ‘대한민국 국기법’이란 게 있는지 할아버지를 통해 처음 알았다.
“국기는 나라의 얼굴이야. 자신의 얼굴이 더럽혀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국기가 지지분하면 깨끗이 빨래를 한 후, 다림질까진 바라지 않아. 세탁은 해야되는 거 아니겠어.”
관공서나 군부대, 각급 학교에선 1년 내내 국기를 단다. 시커멓게 때가 끼었거나, 찢어진 경우도 간혹 있다. 어르신은 그런 관리 소홀을 지적하셨다.
광복 70년, 김달육 할아버지를 통해 국가와 국기에 대한 존엄함을 배운 날이었다.
[국기를 연중 게양하는 장소] [가능한 국기를 연중 게양하는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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