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속 봉사활동(~20년12월까지)/☞ 대한적십자사 - 경남

적십자와 서예와 시는 나의인생(인터뷰기사)

건강미인조폭 2011. 10. 12. 14:03

2008/03/25 08:46

 

제주총회를 가는 3월12일 비행기 옆자리에 함께 한 마산지구협의회 정정열회장(61세),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비행기 내에서 인터뷰를 갔게 되었으며 2008년도 총회에서 우수봉사원으로 총재표창을 받는 뜻 깊은 자리에 동행하게 되었다.

 

Q : 회장님!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의 인터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A : 호호 맞네요. 한일도 없이 인터뷰에 응한다는 게 쑥스럽군요.

 

Q : 별 말씀을요. 항상 잔잔한 미소 속에 인자함이 베어있어 저도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은 걸요. 호호~ 요즘, 회장님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A : 네! 특별한 질병 없어 아직은 건강합니다.

 

Q : 회장님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며 봉사하신지가 얼마나 되셨는지? 적십자봉사원이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A : 1남1녀 남매를 두었지만 모두 출가해 지금은 남편 조정규(64세, 전 경남대 취업본부장) 씨와 마산시 월영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도 5월에 13명이 참솔봉사회를 결성하여 왔으니까 17~8년 되나요.....
현재 봉사시간은 6,200 여 시간 될 겁니다.
적십자와의 인연은 1969년 2월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고성군의 송계초등학교에 발령받은 후 교직생활 13년을 정리하고 1982년 3월이었어요. 1~2년을 그냥 놀다가 여가활동을 현명하게 보내야 되겠단 결심으로 서예란 걸 선택하게 되었어요. 서예시작 23년, 수상
경력도 있지만, 아무 욕심 없이 그저 묵향이 좋아서 손톱 밑에 매니큐어 대신 먹물을 뭍이고, 벌써 8회가 되었답니다, 3년마다 전시회를 열고 있는 묵진회가.... 2009년 5월 9번째를 준비 중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이면 불을 밝혀놓고 묵향가득 채운 글
에서 나만의 세계를 갖는 다는 건 행복할 따름입니다. 한 획 그어 놓고 무언가에 심취한 그 기쁨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가끔 적십자봉사원과 서예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했을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Q : 말씀을 듣자니 서예의 매력에 저도 빠지겠는 걸요.. 묵진회 전시회에 꼭 가봐야 겠어요. 랜 시간 해 오신 서예와 적십자의 수상 경력은?
A : 적십자사의 수상경력은 없어요. 이번에 제주에서 받게 되는 총재표창과 중풍병원의 어르신들 봉사활동가는 곳에서 받은 삼일정풍병원장의 감사장이 전부입니다. 서예에서는 경남미술대전, 개천예술제, 성산미술대전, 한국서예대전.... 적십자봉사원 인터뷰에 서예 이야기만 하는 것 같군요.

 

Q : 아닙니다. 오늘은 회장님의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편히 말씀해 주세요. 혹 기억에 남는 봉사가 있다면...?
A : 1994~97년 상남동에 한복남(75세)할머니와 각별한 인연이였죠. 결혼해 아이를 못 낳는 다는 이유로 혼자가 되어 밑반찬, 목욕봉사, 설 명절 챙기며 생신 챙겨드리고 쪼그만 방 한 칸에 연탄 냄새 진동하는 부엌, 찌든 세간이지만 우리와 핏줄 같은 인연으로 봉사원이 가는 날은 머리까지 감고 기다리셨던 할머니와 1997~2003년 회원동의 윤춘자(80세)할머니,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알츠하이머 병에 고생하신 할머니는 사업부도나 자취를 감춘 아들이 있고 딸은 암으로 고생하며 이려 엄마가 수족을 떨며 딸을 간호하며 딸의 치료비를 신경 쓰셨던 할머니, 나와 중앙 봉사회, 참솔봉사회가 7년 동안 월13만원의 보조도 헛일이 되고 구호품을 가져갔을 때는 딸은 죽고 갑자기 나타난 아들이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어디론가 갔다고 하여 봉사원들은 망연자실... 덜덜 떠는 수전증으로 늘 봉사원들에게 미안해하던 할머님이 기억에 남는 군요.

 

Q : 말씀을 듣다보니 제주에 도착을 다했다는 군요. 담에 마산으로 찾아가 뵈어도 되겠는 지요.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제주에서의 총회를 마치고 회장님과 저의 봉사활동시간으로 3월20일 마산 월영동의 정정열 회장댁을 다시 방문, 못 다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Q :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창원지구 정정혜회장(65세)님과는 자매지간으로 아는데 어떻게 자매가 같은 봉사원이 되었는지요?
A :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진주 반성역장이셨던 1950년대 전쟁 고아들을 우리집에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아요.

 

Q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 섣부른 욕심일는지 모르지만 적십자봉사 10,000시간과 서예개인전 한번쯤 열고 싶고 졸작이지만 틈틈이 써 모은 몇 편의 시를 모은 시집을 한권 더 내고 싶어요. 그리고 나이 들어 봉사가 힘겨울 때는 교육의 현장에서 청소년 정신교육장이나 복지회관에서 서예 봉사를 하고 싶기도 해요.

 

잠시 정정열회장은 자신의 작품인 ‘금강경’ 금분으로 쓴 병풍을 꺼내 보여주었다.

 

1년여에 완성하셨다는 병풍은 작품이었다. 그밖에 ‘대학’전문을 진서체로 쓴 것을 내세우며 서예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Q : 오늘 너무 좋은 걸 보고 갑니다. 감히 회장님 앞에 서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군요. 시간을 내어 정회장님께 한 수 배우러 와야겠어요. 그리고 장시간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A : 별거 아닌 거에 귀 기우려주어 고마워요.

 

Q : 아닙니다. 바쁜 시간 내주어 감사드립니다.

정정열회장이 2001년도 독거노인(박원태 할아버지)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쓴 시 한편을 소개해본다.

박 원태
정 정열

긴 골목 끝집에서
등이 휜 박영감이 아침을 연다.
닳아진 바짓가랑이 군청색 단벌신사 줄 세워 입고
동 사무소 김 주사를 만나러 간다.

오늘은 봉급날
영세민 12만원.
그 속엔 그의 젊음이 있고
신씨 가문에서 자궁 틀다 비명에 간
박영감이 챙길 핏줄이 있다.

문풍지 울음 새로 내살 붙이 저려오면
짜릿한 소주잔 바람벽 데우다가
주워온 옥장판에서 밤새 따끈한 고향을 뒤척인다.

세상의 징검다리 막살진 않았지만
삶은 그의 편이 되지 못했고
칩거할 단 한 평의 자라도 없었다.

청솔가지 연기처럼 뭉글뭉글 만장(挽章)휘날리며
상여 소리만 이라도 울리고 싶다더니...

긴 골목 끝집에 아침이 왔다.

문간 밖 누렁이만 밥주발을 핥고 있다.

(2001,5월, 적십자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월영동 자택에서 차한잔을 나누며 계속 된 인터뷰~~

총회에서 지루함을 레크래이션으로 달래주기도

마산창원자매와 진주쌍둥이 형제들과
진주박용동홍보부장,창원정정혜회장,진주청운단위박용만고문,마산정정열회장

2007년 6월 마산서 창녕으로 양파 일손돕기 봉사활동을~(앞줄 가운데 빨간스카프)

마산 대우백화점에서의 조손가정 돕기 바자회 기금마련을 하기도

2007년 8월경남홍보부의 시각장애인 나들이에 함께 활동을
뒷줄 가운데 빨간스카프를 한 분


총재표창을 받는 정정열회장
2008년도 제주총회에서의 적십자 상은 처음 받는다는 총재표창에 기뻐하는 정회장


전시장에서~~ 법문내용

손수 1년에 걸쳐 금분으로 썼다는 ‘금강경’ 10쪽 병풍(전시장에서)

경남대학교 평생대학원 '딱새와 봄'에 실린 정정열회장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