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사찰여행

경기도 여주 신륵사

건강미인조폭 2011. 11. 14. 11:27

2011년 4월

신륵사를 다녀오며

 

 424일 오전 730분에 신도들은 경기도 여주 신륵사로 성지순례 길을 떠났다.

 

각자에 자리에 앉아 남해고속도로를 오르자 큰스님의 인사말씀으로 거리가 멀어 찾아가기 힘든 장소니 만큼 신륵사의 모셔진 극락전의 아미타불 부처님께 마음속 소원 빌어 부처님의 기운 받아 오는 성지순례가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신도들은 안전벨트로 안전을 맡겨 보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 이어 버스 내 모니터에서 경전 화엄경 약찬게가 흘러나오자 신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읊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지난번 전남 미황사에 이어 두 번째 길이어서 다소 낯선 여행이기도 했다.

 

얼마간 지났을까 틈틈이 지역특산품을 알려주는 기사님의 센스 있는 목소리가 긴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주기도 했다.

성주휴게소와 충주휴게소 두 곳을 머물며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의 대한조계종 경기도 여주신륵사에 도착되었다.

 

신륵사의 역사를 간단히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아홉 마리의 이 승천한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 그 후 보제존자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입적 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경기도 여주군 봉미산 남쪽자락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본사인 용주사 말사이다.


신륵사라는 절 이름에 관한 유래로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이란 바위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신기한 굴레를 씌워 굴복시켰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고려 고종 때 신륵사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의 과 제압의 뜻인 을 합쳐 신륵사(神勒寺)’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신륵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공사 중으로 부분적으로 어수선하고 분주해 보였다.

극락보전에 들어서자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고 있으며 아미타불 뒤에는 아미타후불탱화가 모셔져 있었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카메라를 옆에 내려놓고 합장하며 삼배의 예를 올렸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보물 제 225)은 해체보수중이라 철제빔에 갇혀 있었다.

 

삼성각 독성, 산신, 칠성을 탱화로 모셔 놓았으며 18나한을 모신 명부전이 있었으며 600년 된 향나무가 조사당 앞에 있었다.

 

신륵사경내는 많은 문화재와 보물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은 보물 제 180호 조사당 이었다. 이곳은 대선사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으로 목조로 나옹화상의 상과 지공, 무학대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당 뒤에 나무숲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보물로 지정된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부도(보물 제228), 신륵사 보제존자 앞 석등(보물 제231),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를 만나게 된다.

보제존자 석종부도는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종 모양을 닮았다하여 석종이라 불리며 석종비는 나옹화상의 부도를 만들어 사리를 봉안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여 놓았으며 비의 뒷면에는 약 200여명의 문도와 승속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었다.

석등이 있는 곳에서 앞을 내다보니 좌측멀리에 탑이 보였다.

 

탑을 보기위해 아래로 내려와 극락보전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것은 600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그 뒤에 보물 제226로 지정된 흙으로 구은 벽돌로 쌓은 탑인 신륵사 다층전탑이 있다. 이 탑으로 인해 신륵사를 벽절(壁寺)이라 부르기도 한다. 합장을 하고 탑을 세 바퀴를 돌며 마음의 소원을 빌어도 보았다.

 

탑 아래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좁은 계단 길을 따라 내려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다비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경기도 문화재 제 133호인 신륵사 삼층석탑강월헌 정자를 보게 되며 이곳서 신도들에게 기념 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강월헌 정자에 앉아 남한강과 자연의 멋스러움을 감상할 쯤 거친 바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유난히 많은 보물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소개 할 것은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제 230)는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고자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아주 오래된 시간과 자연의 풍화를 견뎌 온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비문은 깨지고 닳아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더 이상 훼손 되지 않기를 바라도 본다.

 

그밖에 관음전, 범종각, 봉송각 등 더 많은 전각들이 있었다.

 

하얗고 자주 빛의 목련, 노란 개나리, 분홍빛의 진달래가 봄 자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기며 우리의 정감을 자아내는 곳 신륵사, 많은 탱화를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그냥 마음 푸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찰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에 떨어지는 하얀 벚꽃 잎을 맞으며 성지순례 참배를 마치고 출발 버스에 올라탔다.

 

 

극락보전

 

 

다층석탑

삼성각

 

 

 

명부전

 

봉송각

조서당

 

 

 

다층전탑

보호수 '은행나무'

보호수 '향나무'

석등, 석종, 석종비

대장각기비

삼층석탑

강월헌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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