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6월 10일 33주년 결혼기념일, 남편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했다.
석사를 마친 아들은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아들은 이른 휴가로 우릴 가족여행으로 태국의 방콕과 파타야로 초대했다.
여행을 다녀 온 지금,
아들에게 고맙고 사랑하며 이루고자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며 여행기를 써본다.
24일 오후 5시30분, 집을 나섰다.
비온거리를 짐을 줄여가며 택시에 올라 박물관역에서 공항까지 경전철을 이용했다.
24일 저녁 8시 50분 김해공항서 출발, 한국과 2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태국시간으로 25일 2시40분 방콕 공항도착, 태국인 가이드 피(P)’가 우리를 인솔했다.
태국 가이드 P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벗어 났다.
우린 13명이었다.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는 4명도 아침에 만났다. 해서 우린 17명이었다.
공항을 벗어나며 우릴 3박4일간의 이동해줄 태국버스가 ‘한국인 차홍렬 가이드’와 만나며 30분가량 이동하며 호텔에 도착했다.
운전석은 우측에 있어 좀 어색해 내리고 탈때 잠시 멈추게 되었다. 도로 건널 때 탈 때 주의를 강조했다.
도로는 대체적으로 신호등이 없고 차가우선이며 우리와 반대로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었다.
가이드는 덧붙였다. ‘국왕이 있는 나라가 우측에 운전석이 있습니다’ 라고~
우린 19층에 투숙을 했다. 객실에 오르기 위해 승강기 앞에서 단추식 벨을 누르는 것이 아닌 보안을 위해 호텔 방 카드열쇠를 이용해야 했다.
또한 태국은 지반이 약한 관계로 지하도를 만들 수 없어 지상주차장을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19층에 1916호, 스위소텔 르 콩코드 호텔 앞에서
6월 25일
피곤한 몸은 모닝콜에 의해 6시 30분까지 휴식을 취하며 1층 호텔식당서 아침 먹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스위소텔 르 콩코드(방콕)’이었다. 우리는 8시, 파타야로 출발했다.
주5일 근무이라 주말도로는 한산했다.
태국은 강이 많았다. 수질의 색깔아 맑아 보이지 않았지만 흙 색깔 때문이었고 오토바이 외에 수로로 출근을 한다.
불교문화와 현재국왕은 1946년에 왕이 되었고 70년간 자리를 지키며 정치를 하지 않고 아버지 같은 어른의 상징할 뿐이며 산이 없고 평야가 넓어 농사지을 땅이 많았다.
방콕은 작은 태국으로 칭하기도 하며 발바닥이 보이는 건 예의에 벗어난다고 했다.
귀여운 어린이를 보고 우리나라 같이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이곳 태국에서는 머리만지면 귀신이 해코지 한다고 믿는 문화차이가 있다며 가이드는 주의를 부탁했다.
택시들이 화려했다. 단색은 회사택시, 앞쪽 노랗고 초록의 투톤은 개인택시란다. 우리와 다르게 회사택시가 안전하다고~~
기본요금 한화 1,200원 정도의 화려한 택시가 눈길을 끌었다.
회사택시는 한 가지 색깔이며 투톤은 개인택시로 우리나라와 다르게 회사택시가 안전하다 안내했다.
버스는 일반과 좌석으로 창문이 열린 것은 일반버스 창문이 닫힌 것은 좌석버스로 안내양이 있다.
또한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택시도 있었다.
색깔 있는 조끼를 입고 오토바이 운전하는 것이 오토바이 택시로 조금은 위험하다.
모계사회로 여자들이 일을 하는 관계로 세끼를 주로 사 먹으며 우리나라 같이 밑반찬문화가 없으며 쌀국수를 한화 1,500~2,000원 정도의 저렴하고 소량의 음식을 먹는다.
의상 검사를 하며 긴 바지 긴치마를 입게 했다.
'비만맥 궁전'에서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었다.
거리에는 왕과 왕비의사진이 걸려있으며 노란색 깃발은 왕실로 보면 된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4~50분지나 ‘비만맥 궁전’를 관광했다.
이곳서 일명 강호동이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았다. 뚱뚱한 외모 때문인 듯했다.
이곳 궁전은 복장규제로 긴바지나 긴치마를 입어야 했다.
그곳서 보자기 같은 치마(비틱?)를 팔고 있어 짧은 바지를 입고 간 관광객들은 사 입고 들어갔다.
난 다행히 7부도 아닌 9부바지(발목까지 내려온 바지)를 입고 있어 들어 갈수 있었다.
또한 철저한 보안을 위해 사진도 찍을 수 없었으며 가이드를 포함은 관광객의 소지품모두를 준비되어있는 사물함에 넣고 빈손으로 긴 바지, 긴치마, 맨발로 궁전을 관광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볼 사이 없이 사람에 밀려 다녔던 것 같다.
나 같이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일 것이다. 단, 밖보다 조금은 시원했던 것 같다.
이곳 ‘비만맥 궁전’은 한국의 국회의사당으로 보면 된다.
이태리대리석에 대부분이 노란 금색 빛으로 국왕과 왕비가 생활한 곳이며 주로 전시실로 침실 왕 접견실이며 주석공예품을 비롯한 크리스털, 상아 등의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왕실가족들의 유럽에서 공부할 때의 사진이 있었으며 국빈을 모시는데 쓰이고 있다.
건물의 노란색은 왕, 분홍색 왕비, 녹색 손님, 파란색 식당, 흰색?으로 구별하면 된다.
아난다 사마콤~ 2개의 건물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곳서 20분 거리의 ‘아난다 사마콤’을 관광했다. 그곳은 주로 왕족들의 파티행사를 한다고 안내받았다.
이곳에서는 커다란 두 개의 건물 앞에서 사진 찍는 걸로 만족해했다.
한 시간 반 이동해 ‘코리아타운’에서 쌈밥정식으로 김치찌개와 점심을 먹었다. 풋고추가 젓가락 크기만 했다. 태국의 매운 고추(프리키누?) 크기는3~4cm정도의 작은 고추로, 우리부부는 정말 매웠지만 난 반씩 잘라 두 개를 눈물을 흘리며 쌈에 싸서 먹었다.
다시 긴 시간 이동해 오일(야몽:태국파스)을 발라가며 두 시간의 안마를 받았다.
안마 후에 피로가 풀린다며 계피향의 차를 마시도록 준비해줬다.
안마 뒤에 마신 계피 차
이른 식사로 태국식 샤브샤브 수끼(어묵탕)로 식사 후, 게이(gay), 트랜스젠더들이 펼치는 ‘알카자 쇼’를 보기 위한 장소로 왔다.
잠시 시간이 있어 개인시간이 주어져 거리관광을 하며 과일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거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두리안은 냄새로 먹을 수 없었지만 망고와 코코넛을 먹으며 환전을 했다. 화폐 단위는 바트(환율은 35원 정도로 1바트= 35원)
거리에는 그들의 보양식이 개구리, 전갈, 번데기 등의 튀김이 소름을 돋게 했다.
안마 등의 마사지를 받도록 여성들이 관광객을 유도하고 있다.
승합차 뒤부분에 의자를 만들어 운행하는 버스택시라고 했다.
환전을 하며 코코넛과 망고를 사 먹고 더위를 시키며 다녔다.
태국인 보양식 전갈을 비롯해 진열되어있다.
트렌스젠더들의 알카쟈 쇼장을 찾아서~
입장권에는 상- 남성 하-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이동수단으로 일반버스는 없이 트럭을 변형한 버스택시가 있다.
알카자 쇼의 입장권에 상체는 남성이 하체는 여성이 그려져 있어 쇼를 알 수 있도록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다양한 무용을 접했으며 한국관광객들을 위해 아리랑에 맞춰 부채춤과 장구춤도 보여주었다.
남성이 여성으로 수술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외모가 상당히 예뻤지만 그들의 삶을 선택한 부분에서는 엄마라는 이유로 조금은 슬펐다.
여자보다 더 예뻤다.
파타야에서 이틀간 ‘T SIX 5’호텔서 투숙했다.
객실에 들어오자 우릴 기다린 건 한국가이드가 준비해놓은 과일 바구니이었다.
차홍열 가이드에 보내 준 과일바구니
한국서 준비해간 볶음 고추장에 멸치,김과 과일을 안주삼아 소/맥을 마시며 원정 가족회의를 가졌다.
살짝 어둠은 아들의 센스로 조명을 밝혀주었다.
함께 간 거제 팀과의 야주(夜酒)가 있었지만 맥주와 한국서 가져간 소주로 일명 ‘소맥’을 하며 아들과 시간을 가졌다.
6월 26일
호텔식 아침을 먹고 아침7시 호텔을 빠져나와 해양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산호섬을 갔다.
5분정도 섬에 들어가기 전 바다 한가운데 임시 선착장에 내려 쾌속보트로 낙하산을 탔으며 보트선장의 강약의 핸들조정으로 낙하산이 물에 빠트리며 다시 날기도 했다.
산호섬을 가기 위해 배에 올라 산호섬 가기 전 임시선착장을 찾았다.
쾌속보트에 의해 아들은 낙하산을 탔다.
다시 배를 타고 산호섬에 도착했다.
20분정도 배를 타고 산호섬에 도착해 비치파라솔 아래 누워, 곱고 보드라운 산호모래는 발바닥을 간지럽게 했다.
당연히 바닷물은 짰지만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바다는 초록의 에메랄드로 아름다웠다.
보따리 상인들이 있었지만 호객행위가 없었다. 그리고 깨끗했다. 우리 내 바닷가 풍경을 잠시 비교해보게 했다.
작은 배는 물에 두 발을 담그며 모래사장에 도착해야 했다.
부산 광안리에 재잘 처자들~
바쁜 일정에 물놀이 준비를 못한 아들은 남편의 반바지를 입혔다.
제트스키를 타며 속도를 너무 낸다며 결국 핸들을 빼았겼다.
남편은 엉덩이만 붙이며 잠에 취했다. 원인은 전날 마신 술이 문제였다.
광안리 처자들 태양을 피하기 위해 표정이 엉망이다. 부산의 젊은 부부가 안 보인다.
잠시 물가에 놀며 순서에 의해 난 제트스키로 바다에 나서며 스릴 만점의 바다를 즐겼다.
어젯밤 마신 술로 속이 불편한 남편의 졸음을 쫒으며 잠시 물놀이를 했다.
한국 차홍열 가이드의 경험으로 모든 일정들은 가는 곳마다 기다리지 않고 레저를 비롯한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10시10분(한국 12시 10분) 산호섬을 빠져나왔다.
물가놀이는 허기가 빨리 찾아왔다. 한국 시간으로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요동이 심한배로 20여분타고 내려 5분 거리의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삼겹살 쌈을 무한리필의 한국식 밥을 먹었다.
모두 물놀이 지친표정이지만 집 밥인 듯 즐겁고 맛있게 먹었다.
카메라 맨들은 어느 장소고 따라 다니며 찍은 사진은 곳곳에서 액자에 넣어 팔기도 했다.
든든해진 배로 코끼리트레킹 장소로 옮겼다.
코끼리는 징그럽게 생겼지만 긴 눈썹에 눈망울만은 선해보였다.
포도농장→황금 절벽사원→수상시장→저녁식사 부대찌개→파타야 야경 순으로 일정을 마쳤다.
포도농장에서는 예쁘게 꾸며놓은 곳이 많아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황금 절벽사원은 태국의 국왕 취임 5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수상시장은 미로 식으로 길이 복잡했으며 바닥에 빨간색과 초록색의 화살표시가 되어있다.
수상시장 내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 빨간색 들어가는 길, 초록색 나오는 길? 조금은 헷갈렸다.
그곳 시장은 입장료를 내야 했다. 옷가게 액세서리 등을 팔며 작은 보트에서 악어꼬지를 말았으며 수상밴드가상인과 장보러 나온 관광객 흥을 돋웠고 물가 작은 배에서 아낙들이 두리안을 비롯한 과일을 팔기도 했으며 악어꼬지를 팔기도 했다. 우리 내 입맛은 아닌 걸로~~~
방콕과 파티마 집중단속기간으로 현지민가이드만이 야시장관광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린 단속이 심한관계로 야시장 관광을 못했다.
부대찌게 먹은 식당
저녁식사는 김치찌개에 소시지 몇 개가 들어간 부대찌개였다. 입맛에는 맞았다.
파타야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전망대를 찾았다.
야생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지만 보지는 못했다. 작은 도시 김해만도 못했다.
시내 관광에 나섰다.
한국가이드가 사주는 맥주를 마시며 은퇴한 무이타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를 보았지만 경기는 손발을 맞춘 시합이었다.
살모사도 등장했으며 구렁이들 보기도 했다.
경기 끝날 때 마다 1달러씩 주어야 했다.
난 1달러를 주고 구렁이를 목에 둘러보기도 했다. 징그러웠지만 아무감각이 없었다.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한국의 이태원과 같은 파타야의 워킹스트리트거리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술사도 만나며 남편에게 짓궂은 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가이드는 김해 팀에게 맥주를 대접해주었다.
우린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소주를 가져가 소맥을 마시며 타파야의 밤을 즐겼다.
지나친 과음은 안마신만 못하다 했지~ 라는 생각을 하며 적당히 마시고 일어날 쯤 남은 소주는 종업원이 채어가듯 들고 갔다. 그만큼 한국소주가 인가가 많다고 했다.
우린 호텔로 들어와 짧은 밤을 아들과 길게 보내며 행복한 밤이 되었다.
6월27일
어제 밤 마신 술은 가족과 즐거운 마음으로 마신 탓에 거든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호텔식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호텔식당에 김치에 고추장이 놓인 테이블이 있었다.
한국 아줌마들의 식탁이었다. 가족인 듯 남자들은 막걸리까지 싸들고 왔다. 한국산은 어쩔 수 없는 듯~
마지막 날 파티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와 방콕 투어에 나섰다.
특별 면세점을 방문, 라텍스관광을 했다.
다음 악어농장(발가락18개 앞5/뒤4개씩)으로 향했다.
기린은 바나나먹을거리에 사람과 가까이 했고 빈손으로 가까이 가면 피했다.
백만년 된 나무화석이 있었다.
사막의 장미를 보호하기위해 보호막이 처 있었다.
악어농장의 특성상 파리들의 환영의 공격을 받으며 악어 쇼를 마쳤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25분가량 달려간 곳은 파인애플농장, 그곳서 준비 된 망고와 파이애플과일을 먹었다.
거제 팀 자매들이 망고스틱을 대접해주었다.
3~5월이 가장 덥고 주로 이들은 12~1,2월 북쪽으로 피서 가는 곳은 ‘치앙마이’라고 했다.
파인애플 농장 가던 중에 차선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렸지만 벌금 몇 푼으로 통과되었다. 벌금을 즉석에서 주면 되었다.
유럽의 축소판인 태국의 치앙마이 강력추천하기도 했다.
파인애플농장서 과일 맛을 보며 다시1시간20여분을 타고 방콕으로 향했다.
차내는 부산 광안리의 여중동창딸내미들의 재잘거림이 조용해지며 모두 수면에 들어갔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선물 점을 찾았다. 이익금은 교민들의 한인학교 짓는데 쓰인다고 했다.
오십 견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서 야몽(파스류)을 샀다.
15분지나 1991년도 기네스북에 등제 된 가장 큰 식당 ‘로얄드레곤’을 찾았다.
이곳은 한번에 5,000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12~14시까지 영업으로 한 번쯤 가보도록 왜냐면 크다니까 부지런히 갔다.
가장 큰 식당 '로얄드레곤'
식당 입구는 중국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넓은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음식을 날랐다.
한국식에 맞도록 했지만 똠양꿍(새우 끓인 물)은 먹어 보도록 했다.
방콕의 보석 파는 곳 실론(종로 같은 곳)을 갔다.
점심 식후여선지 모두 숙면을 취했다.
엘리베이터 2번을 갈아타는 53층(6층에서 갈아탐) 자국민만갈 수 있는 곳으로 우린 다른 층은 갈 수 없다. 탄생석을 비롯한 보석으로 우린53층 관광을 했다,
남는 시간에 잡화점(게르마늄, 허브, 악어가죽 등 기념품)을 찾았다.5시30분경 우린 일식과 한식식당으로 갈렸다. 난 일식당으로 옮겨 저녁을 먹고다시 두 시간의 안마를 받고 야시장투어에 나섰다.
안마를 마친 시간 마지막 날 비가 내렸다.우비를 입고 야시장투어를 했다. 우비로 더웠다.
피로도 몰려왔다. 말린 과일과 액세서리를 사며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방콕시간 10시20분 야시장을 벗어나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주차장이 차내서 흔들려 잘 안 나왔지만 멀리서 신발장 같이 보였다.
방콕 '수완나폼 공항'
‘사랑합니다’ - 찰라 쿰 (여자) 품나 큼(남자) '감사합니다' - 사왓디 캅(카)
예의가 바르고 보수적인 나라로 온순한 민족이라 했으며 갈 때 5시간 반, 올 때 5시간 만에 도착되었다.
거제에서 온 4명은 엄마와 두 딸 그리고 이모~
발랄 유쾌한 부산 광안리 4명 처자들~
김해 장유에서 온 가족 4명~
이른 휴가로 부산서 온 결혼 2년차의 신혼부부~
그리고 김해서 간 우리3명까지 17명은 만난첫날부터 방콕공항에서 벗어날 때까지 피P와 차홍열 가이드의 안내로 방콕여행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었다.
피(P)와 배우 이원종을 닮은 차홍열 가이드
마지막 날, 쇼핑을 위한 시간으로 빈틈없이 잡혀져있어 조금은 피곤했으며 우린 27일 밤 11시20분 방콕 수완나폼 공항 도착했다. 공항 내 면세점 입구에는 커다란 뱀 모양의 조형물이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짐들을 챙겨 붙이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지막 사진을 찍기도 했다.
면세점에 들어선 아들은 직장동료들과 먹을 간식과 태국 술을 사기도 하며 28일 새벽 1시 45분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6월 28일
김해공항 도착은 한국 시간 09시~
몸은 피곤하지만 아들 덕분에 여행 잘했다 하는 마음에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다행히 가이드의 자상한 안내로 관광은 잘 했다.
가이드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모두 건강을 빌어봅니다.
※ 여행가기전 주위사항은 여행상품을 싸면 여행지에서 다른 상품을 권해
여행비가 다시 측정되며 일행들과 동행해야함을 알고 가야한다.
이번여행사는 알고 지내던 후배가 추천한 상품으로
현지에서 다시 요금을 주고 여행을 다니게 된 경우였다.
꼼꼼히 살피는 건 우리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