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구정명절을 친정에서

건강미인조폭 2017. 1. 28. 23:44

126

저녁 정각5시에 집을 나섰다.

수산을 지나 부곡으로 고속도로를 피해 한가한 국도를 타고 비교적 편안하게 올라갔다.

 

 

김해에서 국도를 타서 영산톨게이트까지 한 시간이 걸렸으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오르며 현풍 지나서부터 많은 차량들이 보였다.

 

하행선에 달리는 많은 버스를 보며 명절을 실감케 했다.

    

 

상행선을 탄 우리는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달렸지만 하행선은 고속도로가 아닌 저속도로로 엉금엉금~ 우린다행이었다.

영산톨게이트를 오르며 중부내륙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연휴차량으로 도로가 막힐까 염려하며 쉼 없이 북 대전까지 9,900원의 도로 비를 내고 2시간 만에 대전 유성구도룡동에 진입해 아들과 만났다.

 

이곳서 눈 구경을 했다.

 

한가한 도로

이 해장국을 난 참 좋아한다.

 

우린 그곳서 맛 집인 해장국집을 찾아 늦은 저녁을 먹고 아들차량으로 바꿔 타며 850분 신탄진톨게이트를 들어서며 경부고속도로로 영등포가 아닌 안양 오빠 집에 1040분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오빠는 다 늦은 시간까지 저녁식사를 안하고 계셨다.

오빠는 7년 전 언니와 사별한 관계로 두 아들 중 큰아들과 살고 계신다.

뭐든 주고 싶다며 늦은 시간이라도 이것저것을 내어놓으시며 우리를 위해 주문한 홍어회와 21년산 양주에 우릴 대접해 주셨다.

남편과 아들은 오빠의 환영을 받으며 긴 시간을 보내며 아침을 맞았다.

 

홍어와 양주~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오빠와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127

이른 시간에 일어나 난 주방청소부터 했다.

 

시댁에 큰 시숙이 투병 중으로 올해는 제사를 모시기 않기에 우리가족은 서해안으로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친정오빠의 올케언니 없는 빈자리에 커다란 집을 치우신다는 이야기에 여행을 미루고 우리가족은 오빠 집 대청소에 동참을 하게 된 것이다.

 

해서 막내 동생 가족이 오기 전에 주방청소부터 해야 했다. 오빠와 조카 둘이 사는 집이 오죽 하겠는가, 나는 늘 그렇듯이 오빠 집을 오르면 당연한 듯 집 청소를 나름하곤 했었다.

 

늦은 시간까지 음주를 즐긴 오빠와 남편을 위해 집에 있는 얼큰 칼국수를 끓여드리고 점심까지 해드린 후에 동생가족이 명절음식을 위해 들어섰다.

조카들과 아들이 거들며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설음식을 만들고 저녁시간에 동생가족은 영등포로 돌아갔다.

 

128

구정아침

올케 언니 없는 집은 쓸쓸했지만 ,

난 이른 시간에 만두를 쪄서 구웠다.

차례를 지내고 먹는 늦은 아침으로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조카들에게 미리 먹일 생각이었다.

 

영등포식구들이 도로가 막혀 아침 740분이 되어서야 들어섰다.

어제 미리 준비를 해둔 탓에 시간은 넉넉했다.

차례를 모시고 형제간에 건강을 빌며 세배를 하고

아들과 조카들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세배를 받았다.

 

구정 아침은 당면 불려 김치 넣고 갈은 돼지고기에 두부 으깨 넣은 동생 가족이 직접 만든 만두 넣은 떡 만두 국을먹었다. 일명 설에 먹는 제대로 된 떡국을 먹었다.

정성으로 만든 만두에 예쁘게 빚은 솜씨로 더욱 맛이 좋았다.

 

 

작은조카는 결혼해 태어난 지 50일이 넘은 아기까지 있는데 질부는 오지 않았다.

올케가 살아 있었으면 이리되지 않았을 텐데~

 

오빠는 아이(질부)가 아기를 낳았는데 내가 오지 말라했다하시면서도 서운해 하셨다.

사실 나도 섭섭했다.

조카는 아기가 탈나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하며 아기건강만을 생각했다.

 

명절 차례를 지내고 친정 작은 아버지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85세로 경미한 치매를 앓고 계신다 했다.

 

친정작은 아버지 내외분께 세배를 드리고 세배 돈을 받았다.

며느리들에게 50,000원씩을 다 주셨다며 동생들은 받으라고 권장했다.

 

그곳서 사촌 동생부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들이었다.

사촌여동생은 제과제빵자격증으로 빵을 만들어 선을 보이기도 했다.

종합병원간호사로 근무하며 지금은 개인병원을 경영하는 원장사모님으로 행복해보였다.

 

작은아버지는 나를 보며 네 아들 중학교는 들어갔니. 형님(친정아버지) 건강은 어떠하시냐.’물으셨다.

 

20년 전쯤으로 돌아가 살고 계신다 했다.

 

두런두런 들러 앉아 지난이야기를 하며 두어 시간을 보내고 2월 중순께 집안장손(사촌오빠)이 사는 포항에 모시고 오며 김해 우리 집에도 모시고 올 예정이라 사촌동생은 말했다.

    

 

그러렴, 작은 아버지내외분이 건강하실 때 모시고 오렴사촌동생에게 전했다.

인생을 멋지게 사시던 부부신데 어찌 치매가~~~

 

두 분과 사촌들의 배웅을 받으며 안양으로 돌아와 각자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엔 소리 없이 큰조카가 산 낙지와 생선회를 떠왔다.

오빠는 어제는 영국 술을~ 이 자리에서 중국술을 내놓았다.

오빠와 남편, 울 아들과 오빠아들은 신이 났다.

난 있는 동안 오빠 집 청소를 해야 하는 문제로 그들과 합류하지 않았다.

 

129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분담을 하며 집 청소를 했다.

주방, 냉장고, 두 개의 화장실,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오빠의 컴퓨터방~

 

아들과 조카는 재활용품과 음식쓰레기 가져다 버리기에 바빴다.

수고한다며 오빤 외식을 권했지만 냉장고에 쌓여있는 음식을 먹어주는 게 덜 버리는 거란 생각에 점심에 생선매운탕을 끓여먹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각자의 자리를 치우는데 반갑지 않은 비가 내렸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렸다.

 

우린 내일 아침 내려갈 계획을 바뀌고 4월에 집안행사로 다시 서울을 찾을 때, 청소를 해주기로 하고 쓸쓸하게 두남자만(오빠, 조카)을 남기도 김해로 내려가기 위해 서둘러 내려왔다.

 

 

대전에서 맛 집인 묵 집을 찾아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들과 헤어지며 남편차로 바꿔 타고 비와 눈을 맞으며 김해로 내려왔다.

 

 눈과 비가 함께 내렸다.

저녁은 묵밥과 보리 밥을 먹었다.

우리 하행선 길을 뻥 뜷렸지만 상행선은 눈,비로 오르기에 바빴다.

아들을 직장에 내려주고 빗길을 조심하며 우린 김해로 달렸다.

 

내려오는 도로 역시 오르는 도로와 다르게 한가하게 편안히 내려올 수 있었다.

10시 도착한 김해는 땅바닥의 비도 말라있었다.

 

 

여자 없는 집에 외식을 하며 지내는 두남자만 남겨두고 갑작스런 날씨로 도망치듯 내려와 오빠에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26일 저녁부터 긴 시간 함께 해준 아들에게 고맙고 4월 다시 와서 집안정리 해주자 말해준 남편에게 더욱 감사한 3일간의 구정 일정이었다.

 

'♣ 여행 > ☞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각인과 노래방 찾아  (0) 2017.02.10
새로운 제안  (0) 2017.01.30
가리비와 굴  (0) 2017.01.22
강추위에 서울에 오르며  (0) 2017.01.16
다육식물  (0) 2017.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