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 ~17일
김해공항 → 호치민 → 달랏 → 무이네 → 호치민 → 김해공항 여행기
10월12일
새벽5시 잠에서 깨었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미행남편차로 6시55분 집 앞서 만나 김해공항에 도착되었다.
15명은 미행이 통솔하는 데로 움직이며 수속을 마치고 있을 쯤, 잘 다녀오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나름 들뜨기도 하고 이른 잠에서 깨어 연이어 하품을 하며 호치민 가는 10시 베트남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앞에는 적십자봉사원 은진이와 숙이가 옆자리는 봉금과 진희가 나란히 앉아갔다.
창밖에 구름사이로 거가대교가 보였다. 밖은 아름다웠다.
11시가 넘자 기내식도시락이 나왔다. 불고기비빔밥을 고추장 넣어 비벼먹었다. 물론 기내식와인도 한잔했다. 커피까지 마시고 목마름을 캔 맥주로 숙이와 나눠마셨다. 시차는 두 시간이라지만 얼마를 왔을까? 한 시간의 시차를 알 수 있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세 시간이 지나자 커다란 내 몸이 비틀렸다. 수다삼매경에 빠진 사람도 있지만 지그시 눈을 감고 쪽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행기천장에 매달린 작은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며 남은거리를 보게 했다.
아직 이었다. 잠시 잠을 더 청했다.
호치민에 다가갈 쯤 구름 아래로 보이는 것은 반작거림이 양철지붕인 듯 아름답게 보였다.
베트남 호지민 탄손녁공항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내할 주옥자씨가 나와 있었다. 주옥자씨는 베트남 과일 열매로 물들이 열매찰밥을 준비해 허기진 배를 채우게 했다. 코코넛까지 마실 쯤, 우리 적십자봉사원이었던 김경애와 닮은 사업하는 한국인 엄순자씨도 나와 인사만 나누고 마지막 날 보자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행사를 했던 정임선씨와 합류하기도 했다.
김미행과 엄순자님(파마머리)
봉금이와 안마를 받으며~
다음 비행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 모두가 전자의자 기계안마를 받았다.
탄손녁공항은 오후5시반 비행기도 지치도록 기다리게 했다. 느렸다. 베트남사람들의 습성이라고 했다.
6시10분이 지나고 어둠이 깔리며 대형버스 같은 실내로 68석의 한 시간거리의 두 번째 작은 비행기를 타고 달랏으로 향했다.
도착 후 시간은 2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달랏공항에서 장애인학교를 운영하는 한국인 권,최부부를 만났다.
우리는 34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버스가 우리로 호텔에 이동시켰다.
달랏은 1600고지로 높은 지대로 휴양지로 적합한곳이라 했다. 물이 있고 미니호텔이 2000여개가 있고 하루 세 번 여는 달랏시장이 있다. 생활하기가 편하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지배를 받은 곳으로 프랑스의 외과의사가 별장으로 살면서 정치를 했던~ 프랑스풍의 도시이기도 하다.
5~11월이 우기철로 오후는 집중호우가 거의 온다. 초가을과 늦가을이 있는 곳이다. 신호등이 없는 작은 도시이기도 하다.
프랑스 지배도시로 당시 인위적으로 커피를 심어 지금까지 커피로 유명해지게 되었으며 화훼단지 이기도하다. 단, 벼농사는 안 된다고 한다.
달랏시장은 하루 세 번 열리며 새벽3~5시 생고기 생선 류, 6~17시 일반시장 옷 그릇 등 18~21시까지 먹을거리 뜨게 옷 등을 판다. 솔방울이 행운을 준다고 믿고 있어 소나무로 만든 나무액자와 작은 액세서리가 많았다.
우리도 야시장을 들렸다. 그곳서 의령의 망개떡과 같은 떡도 맛을 보았다.
달랏의 숙소인 소나무호텔에서 권, 최부부와 지난이야기를 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10월13일
편안하고 화창한 달랏의 아침을 맞았다.
권, 최 부부의 달랏에서의 이른 노후준비로 달랏을 선택하며 장애학생들과의 학교를 설립하기까지의 희로애락의 생활을 들으며 이동을 했다.
초창기의 어려움을 디뎠다고 하지만 현재 그들 부부는 편안해 보였다.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랑비앙 산을 찾았다. 비온뒷날거리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가는 길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지프차는 엉덩이를 자동으로 흔들게 했고 기름 냄새도 심하게 났다. 네 곳의 차문은 문고리가 없어 안에서는 열수가 없을 정도로 정비도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랑비앙 산에 안전하게 6명이 지프차를 타고 10분정도를 올랐다.
내외동단위봉사원
랑비앙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긴 호수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새들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또한 달랏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발 1950고지의 독수리 동상이 있는 자리가 미 헬기장이었다고 한다.
랑비앙의 사랑하는 두 남녀의 전설이 있는 동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내외동단위봉사원
그리고 우린 황토마을로 이동했다.
입구에 들어서기전 단체사진을 찍었다.(양끝이 권 최부부)
의미있는 원숭이 동상이 있었다. 입 막고, 귀 막고, 눈 막고, 생각안하고~
자수 전시회장에서 비를 피해 꽃 단지를 거처 민속공연장을 찾았다.
자수 전시장에는 수를 놓는 직업여성인 듯, 혼자 혹은 둘이, 셋이 웅크린 자세로 수를 놓고 있었다.
민속박물관에서는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두드리는 타악기소리에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함께 춤을 추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슈큐 자수박물관 수출생산세계 2위 손재주의 섬세함을 볼 수 있었다.
여성 사진은 자수를 앞 뒤 하나의 모양의 입체적으로 자수를 놓았다.
관객이 하나가 되어
누군가 그랬다 이번여행은 ‘아름다운비전을 향하여’ 라고~~~
10월14일
달랏의 호텔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호텔에서의 아침을 먹고 무이네로 향했다. 7시간이 훨씬 넘는 긴 여행이 되었다.
먼저 폭포수를 만났다. 달랏의 울창한 프랜산은 숲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갔다. 넓은 폭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원숭이 복장을 하고 있는 주민과 20000동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좁은 숲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폭포를 만나고 왔다. 더위는 울창함 때문인지 조금은 시원한 듯했다. 하지만 상당이 더웠다.
2인 1조 혹은 혼자 타고 내려가야 폭포를 만난다.
폭포수 앞에서 1차 인증샷~
원숭이와 사진 찍는데 20000동(1000원)
내려 올때 역시 롤러코스터타고 와야했지만 자동으로 설치되어 있어 오를 때와는 다르게 편하게 내려왔다.
버스를 벗어남과 동시에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괴롭혔다.
버스에서 음지와 양지로 편을 가르며 동요를 부르며 긴 시간 버스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커피나무가 많은 지역을 지나며 쥔장 모르게 커피나무에 흠뻑 취해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리곤 작은 과일 집에서 ‘두리안’이란 과일을 먹었다 달콤하고 맛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나면 냄새가 진동을 해서 호텔에서는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커피나무
'두리안'을 먹으며
모래언덕을 걸으며 어린 시절 탔던 얼음썰매가 아닌 모래썰매를 탔다. 모래 썰매의 도구는 3000동(150원)쯤 준다고 했다.
모래언덕에서 부는 바람조차도 뜨거웠고 날도 상당히 더웠다.
더위와 모래 바람으로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
모래사막을 걸을 땐 무릎 통증을 느끼게 했다. 더 많은 사진 더 아름다운 모습은 찍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많은 모래를 묻히며 나도 추억 쌓기를 했다.
미국인들의 휴양지였던 무이네에 도착되었다.
짐들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바다가 있는 식당에서 흑맥주와 갈비 그리고 야채를 넣어 샤브샤브의 국수와 베트남라면을 넣어 저녁을 먹으며 저녁식사를 겸한 흑맥주의 맛의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돌아왔다.
출렁이는 바다를 옆에 끼고 실내수영장장이 있는 호텔에서 늦은 밤 수영을 즐겼다.
우린 함께 간 봉사원들과 국민들의 음료수(소주)를 마시며 새로운 추억의 밤을 조용히 보냈다.
10월15일
무이네의 장시간버스 여행에 모래언덕의 피곤함 속에서도 일찍들 일어나 태양을 피하기 위한 이른 수영을 즐겼다.
물이 좋은 탓에 비누가 필요 없었다.
물을 많이 먹는 난 물이 필요해 호텔식당물을 빈병에 담으려했지만 이곳 무이네 호텔에서는 허용이 안 되었다. ‘사드세요’ 하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마사지 받기 위해 이동을 한다했다. 이동버스시간을 맞추기 위해 2~3시간의 여유가 있어 바다를 찾아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초록의 푸른 잔디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향신료는 내게 별 의미 없이 잘 먹었다.
11시5분 남자안내원이 주는 비닐봉지를 받으며 신발을 벗고 타는 2층 버스를 탔다. 난 2층 버스 번호 ‘B1’이 쓰인 버스표를 받고 2층에 올랐다. 앞으로 4시간을 간다고 했다. 장 시간가는 버스는 누울 수도 있고 담요도 준비되어있었다.
도로사정은 울퉁불퉁~ 2층 탄 난 진동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장시간 이동은 충분한 수면의 시간에 들어갔다.
바스락 소리에 잠이 깨었다.
남자 안내무원이 50여분이 지나자 작은 물병을 한 개씩 전해주었다.
난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베트남음악이 크게 들렸다. 버스기사가 잠이 오는 걸 참기 위해 크게 틀고 가는 듯 했다. 난2층 여서 귀가 터질 듯 들렸다. 지참하고 있던 이어폰을 꽂고 다시 잠을 청했다.
2시간10분쯤이 되자 넓은 공간의 휴게실에 도착되었다. 화장실이 재밌게 만들어져있다. 변기가 받침대 없이 만들어져 살짝 엉덩이를 들고 볼일을 봐야했다. 10분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참~ 화장지도 없었다. 개인이 소지해야한다.
우리는 장시간의 허기짐을 용과(베트남과일)와 과자 등으로 공복을 채웠다.
과일 '용과'
두 번에 휴게소를 지나서야 도착되었다.
버스는 우리네 고속도로휴게소를 쉬듯 쉬어갔다.
7시간 만에 호치민 ‘여행자의 거리’에 도착했다.
우린 고향이발관을 찾아 얼굴, 발마사지와 귀청소를 받았다.
마사지는 딱히 좋은지 몰랐다.
우린 다시 ‘한솔’이라는 한국인이 하는 식당을 찾아 동태 국에 맛있는 한국음식들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 18명을 위해 커다란 양푼으로 동태 국을 들고 각각의 대접에 담아주었다.
그곳에 아들이 있어 아들과 상봉한 님은 우리에게 맥주를 대접해 가벼이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밤 호치민의 거리에는 비가 내렸다.
10월16일
지난밤 비를 맞으며 밤을 보냈다.
공항부근의 호텔에서 잠만을 자고 호치민 황아탑에 사는 한국인 엄순자씨댁에서 한국식 아침을 먹었다. 굵게 썰은 돼지고기에 길게 찢은 김치로 김치찌개와 야채 셀러드, 숙주무침 베트남 고추지~ 넓은 거실바닥에 펼쳐 소풍 나온 듯, 푸지게 차려 부럼 없이 먹었다.
설거지를 함께하고 베트남 집을 구경한 뒤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함께 5일간 밤을 보낸 봉금이와~~
엄순자님 댁에서의 만찬~
출근시간 많은 오토바이들이 물밀 듯 흘러갔다. 시속50km를 넘지 않는 도로는 신기하도록 안전운행이 되었다.
판다공원의 자연휴양림에서 마지막으로 관광을 하고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팀별로 가장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기에 바빴다.
빅토리아연잎
메콩 강의 끝인 아름다운 곳에서 갈비 살 쌀국수 롤 쌈~?을 먹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돼지고기 수육 쌈일 것이다.
배 둘레를 든든히 하고 호치민 노트르담 성당과 대통령궁을 관람했다. 호화로운 궁전이었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쟁당시의 탱크와 전용헬리콥터가 있었으며 회의장, 공연장 등 다양한 볼거리가 지하로 지상으로 있었다.
중앙우체국 내에는 호치민의 커다란 초상화 사진이 걸려있다. 정치인으로 베트남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인물로 호치민의 이름을 따서 사이공이라 불리기도 하고 호치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체국내에는 각 나라별 시계와 전화박스가 있었다.
중앙우체국의 화장실은 우체국 옆에 유료로 3,000동 왼쪽 끝에서 돌아서 있다.
오페라 하우스
중앙우체국
중앙우체국 내부의 각나라 시계와 전화박스
이곳의 국제시장 같은 재래시장에 가서 약간에 쇼핑을 하고 오리지널 베트남쌀국수를 먹었다. 라임을 짜서 허브와 소스를 넣고 기호에 따라 고추를 넣어 먹기도 한다.
식당을 빠져 나올 쯤 하늘은 약간의 비를 뿌렸다.
우린 마지막 짐을 엄순자씨 댁에서 챙기고 5박6일 베트남여행을 하며 아침 태양을 열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베트남에서 자리 잡기까지 수많은 고생을 하며 지낸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주옥자님, 권 최 부부님, 엄순자님, 정임선님, 이은숙님~의 보살핌 속에 즐겁고 행복한 그리고 안전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적십자봉사원이 가려했다가 갑작스런 집안일로 빠지게 되면서 그 행운을 제가 잡아 이번에 베트남 방문에 힘을 써준 김미행 회원에게 감사하며 평택에서 통영에서 함안에서 울산에서 김해에서~ 함께 한 모든 분들과의 좋은 추억 간직하며 건강과 행복을 빌어도 봅니다.
씬 깜 언~~~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