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황달

건강미인조폭 2021. 1. 13. 18:37

1월 13일

오빠 집에 오빠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잠을 자며 아침을 맞았다.

사실 무섭기도 해서 두세 번 깬 듯했다.

남향으로 새벽부터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제 내린 눈으로 흰 세상은 눈이 부셨다.

 

눈길에 조카들은 무사히 출근하는지 살짝 걱정도 하며 새집에 걸레질하며 세탁기를 돌렸다.

 

잠시 방마다 정리는 잘 되었는지 확인을 하며 문제점들을 조카들에게 알리고 큰조카를 맞으며

그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큰조카는 '고모가 고생이 많네요' '호중아 넌 모를 거다. 네가 3~4살 때 전자공장 하청업체를 할 당시 어음 발행으로 현금이 손에 들어오지 않아 살림의 어려움을 네 아버지가 선 듯 십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주셨단다. 지금 그 돈 가치는 많은 금액이었지. 돈을 줘도 받지도 않고 이번에 그걸 갚는다는 심정으로 병간호하는 거란다. 속정이 많은 분이란다. 조금만 힘내자' 서로 응원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이틀간 병간호해준 남편과 식당 밥을 먹으며 오빠 건강상태까지 교대하고 김해로 내려갔다.

2박 3일간 처남을 위해 병간호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2인실 병실에 오빠는 초췌했다.

 

난 오빠와 눈을 마주치며 '오빠 이삿짐 다 옮기느라 수고하고 왔어.' 오빤 '그래 수고했다' 초췌해진 오빠의 모습에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팔다리를 얼마나 긁었는지 제대로 씻지도 못한 건조증으로 상처투성이였다. 난 물수건으로 팔다리를 씻어드리고 가지고 있는 로션과 핸드크림을 듬뿍 펴 발라드였다. '시원하게 잘하는구나!' 씻는 것조차 혼자 할 힘이 없었다.

 

담당 교수는 황달(간 경화) 수치를 낮추기 위한 시술을 한 번 더합시다.' 하고 간호사는 '금식요' 하고 나갔다.

 

오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복도 대기실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다시 병실로 들어온 후, 오빠 옆 간이침대서 잠을 청했다.

 

2시 40분경 수술실로 들어갔다.

잘 되길 바라며 물끄러미 들어가는 모습만 보고서 있었다.

시술을 마치고 나온 오빠는 두 눈을 감고 통증을 참아내고 있었다.

 

스텐트 심은 곳에 또 겹쳐서 심었는데도 배출은커녕 황달이 생기게 되었다. 시술이 어찌 그리되었는지 무지한 환자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담즙 배관을 달고 결국, 진통제로 통증을 가라앉히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 무렵 배고프다며 환자용 음료를 '잘 내려가네' 하며 맛있게 드셨다. 그것도 잠시 다시 울렁거린다며 저녁으로 나온 흰죽은 내 차지가 되었다.

 

오빤 간장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난 지하에서 보디로션과 커피를 사 들고 올라왔다.

퇴근길에 큰조카가 잠시 다녀가고 오빤 잠시지만, 깊은 잠을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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