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두 번의 헛구역질하며 지난 밤을 보내고 새벽 5시 김해 내려갈 준비를 하며 오빠의 얼굴과 머리 그리고 등을 닦아드렸다.
흉수가 또 샜다. 간호사에게 연락해 거즈를 바꾸는 사이에 퇴근한 작은 조카가 들어섰다.
오빤 '어서 가거라 기차 시간 늦을까 잘 갔다 와' 그리곤 통증으로 인상을 쓰며 잠을 청했다.' 오빠 갔다 올 게 다녀오면 인상 쓰지 말고 웃으면서 맞아줘'
그리곤 조카가 태워주는 택시로 수원역에 도착해 구포로 향했다.
조카는 콜을 부른 택시에 요금까지 계산한 상태였다.
기차는 아들이 살고 다니는 대전도 지나쳤다.
김해를 향해 타고 오는 기차 내에서의 4시간 동안은 가족을 만난다는 반가움보다는 오빠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만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구포에 도착하자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20일 조카 딸내미 결혼식이 있어 한복을 대여받고 파마도 해야 했다. 손톱도 엉망이다..
김해는 따뜻했고 봄이 도착해 있었다.
짐보따리를 집에 던져놓고 손톱 관리받고 한복도 대여받았다.
혼주가 되는 올케에게 전화해서 한복 색깔을 물으니 같은 색상이었다. 전화하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저고리 색상을 짙은 거로 바꾸고 남편에게 찾아오라고 하면 되겠다 싶어 치수를 재고 집으로 돌아와 긴장 속에서 오는 몸살로 잠시 쉬기로 했다.
저녁에 남편은 회를 떠 가지고 퇴근을 했지만 두 젓가락질을 하곤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