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아들 집 가는 길이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다.
대전에 살던 37년 전 내 아들의 백일, 열흘 뒤 안동에 사시는 시어머니의 칠순 생신으로 부산 사는 큰동서는 백일을 하지 못하도록 했었다. 형제들이 각 지역에 떨어져 살기에 부산에서 안동에서 대구에서 나의 아들 백일 후 열흘 뒤에 어머니 생신으로 또 움직여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해서 내 아들의 백일은 서울에서 친정엄마, 아버지, 오빠들이 내려와 백일을 치르며 어머니 생신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렵게 아들을 낳고 백일을 하려 할 때 큰동서는 열흘 뒤 안동 시어머니 생신에 겸해서 하자는 게 이유였지만, 안동 어머니 생신 날 아무도 내 아들의 백일을 모르고 있었다.
막내며느리인 난 그냥 지나치는 것이 서운해 점심 무렵 어머니께 말씀드려 늦은 백일 상을 차려주시기는 했지만, 내 손자의 백일도 코로나로 세상의 일상이 바뀌어 연기를 하며 대물림하듯 제날짜에 못 하며 많은 가족 친지들로부터 축하해주지를 못해 서운하기도 했다.
모유 수유하는 손자에게 들려줄 책과 두 돈 목걸이를 준비하며 조심히 오르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는 설 명절 도로답지 않게 한가했으며 내일부터 전국에 내리는 눈으로 추워진다는 날씨는 화창했다.
지난 27일이 손자 백일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주말로 연기하며 식당을 예약했었다.
하지만 급증하는 코로나 확진자로 예약된 식당도 취소하고 사돈댁과 우리는 따로 손자의 백일 축하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세종시로 오르는 길도 코로나 확진자로 옳은 방법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미크론을 확진자들을 걱정하며 휴게소마저 들리지 않고 달리는 차내에서 그저 멍하니 남편 핸들에 의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숨죽이면 따라갈 뿐이다.
남편도 말이 없다.
안전운행을 위해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힘없이 셔터만 누르며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 아들 집에 도착하며 이벤트사에서 빌린 백일 상에서 바로 기념사진 찍기에 바빴다.
우리 마음과는 다르게 손자는 옹알이로 기쁘게 우리를 반겨주었고 아들 며느리가 준비한 한우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저녁, 직장 선배인 박사 부부 방문에 한결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시간 맞춰 모유 수유를 하는 며느리를 돕기 위해 짜인 시간에만 손주를 안아주기로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안아주던 우리네 아이들 키울 때와 다르게 손주 울음을 들으면서도 안아주지 못해 안타깝기도 했지만 실행한 지 얼마 안 된 손자는 다행히 시간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울지 않는 손자를 남편에 의해 자꾸 손이 가서 며느리에 눈치를 살짝 보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오르는 요즘 젊은이들이 정보력에 또 한 번 놀라며 두 시간 간격으로 먹이던 모유는 4시간 간격으로 먹이며 저녁 9시경 잠든 손자는 새벽 3시경 모유 수유 마치고 우리와 손자는 함께 할 수 있었다.
새벽 4시 할아버지 손에 안긴 손자는 잠들 생각을 안 했다.
며느리의 모유 수유 덕분에 손자 리한이가 건강해 참 다행이고 이대로만 성장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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