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오빠 집에 가기 위해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구포역에서 기차에 올랐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용객들이 적었으며 기차 내는 조용했다.
승차권도 한 칸씩 띄어 앉도록 발행했다.
평일인 이유도 있겠지만 이리만 되면 좋겠다 싶을 만큼 거리 두기는 안정적이었다.
낙동강 줄기도 출렁임 없이 잔잔했다.
배웅해준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다.
37년 살면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전화를 안 하는 사람이 ‘잘 탔냐’고 전화를 했다. 변하고 있다. 남편도 나이를 먹는 것 같다.
KTX가 이용객들이 작아 운행을 중지한 탓에 새마을로 하염없이 가야 했다.
하지만 내부는 가벼운 잠바를 걸치고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아니 추웠다.
가벼운 겉옷을 챙기는 것은 기차 여행자들이 참고할 부분이다.
대구부터는 옆자리도 메꿔졌다.
구미에서 많이 내리고 많이 탔다.
승무원들은 수시로 객실을 다니며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
에어컨을 컸다 껐다 반복하지만, 에어컨 바람으로 추워 손수건으로 목을 싸매 보기도 했다. 기차에서 내려 전철로 바꿔탔다.
전철도 춥다.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목에 손수건으로 감쌌다.
오빠 집에 도착했다.
오빠는 친구분들의 저녁 초대에 나가신 후였다.
준비해간 음식들을 정리하며 세탁기를 돌리고 조용히 오빠를 기다렸다.
6월 27일
아침 7시, 눈을 뜬 오빠와 안양천 둘레길을 걸었다.
올케 생전에 함께 왔던 곳인데 오늘은 오빠라 둘이 걸었다.
잠시지만 오빠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함께 걸으며 작은 힘이지만 외롭지 않게 하고 싶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완만한 경사길을 걷다가 하늘 쳐다보며 쉬기를 몇 번~ '마라톤을 했던 곳인데~' 오빠는 걸으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조금 힘들어하며 혼잣말을 했다.
'암은 체력과 싸움이어서 아침마다 이길 걷는다' 난 '잘하고 있네~' 더는 말하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간 쉼터서 쉬어가는 오빠는 힘겨워 보였다.
하루살이들이 몰려들어도 그저 힘없이 손만 내저었다.
생각 많은 오빠기에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벌레떼들의 데쉬를 받아 벤치에 앉아 쉬지를 못했다.
난 볼거리 조형물도 응석받이 여동생으로 물어가며 한 시간 삼십여 분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영등포에 사는 동생 부부 방문을 맞이했다.
6월 28일
식사도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하시는 오빤 LA갈비를 참 좋아하신다.
식사량도 줄여야 한다는 말에 암말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내겐 슬픈 말이었다.
김치냉장고 한쪽에 항암치료로 병원으로 휴양지로 다니느라 지인으로부터 받은 매실이 차지하고 있었다.
꼭지 빼는 기계를 개발하고 싶어 몇 개만 얻으려는 게 한 자루를 보낸 것이다.
냉장고 안에서도 매실은 익어가며 조금씩 변하고 있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오빤 상한 것 20여 개 남기고 내게 매실을 가져가라고 했다.
‘무거워 싫어’하고 싶었지만, 그냥 빈 여행용 가방에 담아왔다.
오전 10시 동창들과 등산가는 날이라 집을 나서는 오빠와 함께 집을 나왔다.
관악역에서 오빠의 배웅을 받으며 뒤돌아오는 발걸음은 절대 가볍지만은 않았다.
'오빠 미안해' 힘없는 말만 새어 나왔다.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신탄진역에서 아들 부부의 마중을 받으며 잠시 후, 안사돈을 만나 대전의 어느 맛집에서 냉면과 만두로 점심을 먹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곳을 빠져 방송으로 유명세, 얻은 반찬가게로 이동해 몇 가지 반찬을 사고 새로 생긴 ‘대전 모다 아웃렛매장’에 쇼핑하며 안사돈을 청주로 보내드리며 편안히 아들 집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며느리는 산 반찬이지만 잡곡에 은행알까지 넣은 따뜻한 밥을 지어주었다.
반찬은 천천히 배워 가면 되지만, 밥은 성공적이었다.
밥상을 물리고 오빠 집에서 가져온 매실로 아들/며늘 먹을 만큼의 매실 꼭지를 따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엑기스를 담고 저녁 밤을 보냈다.
며느리는 잠들기 전, 침대 옆에 크리스털 기념패를 켜 보이며 '어머니, 넘 예뻐요, 고맙습니다' 또 인사를 받았다.
6월 29일
지난밤, 기차와 전철에서의 냉방 탓인지 목이 따가웠다. 나름 감긴가? 코로난가? 혼자 생각하며 깜박이는 밤을 보냈다.
아침 6시 일어나 샤워를 하며 출근하는 아들/며느리의 아침상은 차려주지 못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했다.
감기든 코로나든 아이들에게 피해가 되면 안 되기에~
기차를 타고 오며 며느리가 챙겨준 감기약에 취해 깜박 잠이 들었다.
이렇게 오빠 집에서 아들 집까지 3박 4일의 시간을 보내고 대전까지 출근하는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들이 내려준 커피와 며늘이 챙겨준 책장을 넘기며 2시간 30여 분의 기차여행을 마치며 김해로 내려와 깊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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