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22일
출근준비를 하던 오빠는 마음 같지 않다면 심호흡을 길게 하곤 더디게 움직였다.
공장에 들러 수안보를 다녀온다 했다.
난 그동안 영등포로 향했다.
길잃은 아지매가 되지 않으려 정신 챙기며 어렵게 영등포 동생 집을 찾았다.
버스 손잡이는 예쁘게 매달려있었으며 37년 전 떠난 이곳의 전철은 어지러울 정도로 변했다.
올케의 따듯한 환영을 받으며 잠시 수다로 이어졌다.
백내장, 하지정맥, 허리협착증, 팔목인대 통증~ 한 군데도 멀쩡한 곳 없이 내게 찾아와 남편과 아들 내외 보기 민망하다 속내를 드러냈다.
올케는 '그만큼 형님이 아들에게 집중하며 긴장하고 사셔서 그래요. 좀 쉬세요' 하며 위로했다.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해주니 올케가 고마울뿐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상태로 오빠 간호가 가능할까? 혼자 생각도 해본다.
동생 집에 간 이유는 위암 수술을 받은 헌혈봉사원 양희성 회장이 직접 만든 꿀에 재인 마늘을 암 투병 중인 오빠에게 전하라고 했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서울에 오르면 올케를 동반하고 나서고 있다.
해서 올케와 양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남대문시장을 들러 입소문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양회장에게 전할 호두와 화장지를 사 들고 만나러 갔다.
양 회장은 꿀에 재워 먹은 마늘 먹고 회복을 할 수 있었다며 오빠에게 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양 회장님이 마늘을 직접 다듬어 살짝 쪄서 꿀에 재워 먹어 체력을 유지 할 수 있었다며 오빠를 위해 한 병을 주셨다.
참 고마웠다.
염치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한 병 얻어 복잡한 서울 전철을 타고 동생 집에 돌아와 솜씨 좋은 올케의 묵은지 등갈비 찜을 먹고 밤 9시 신도림역까지 올케의 배웅을 받으며 오빠 집 안양에 도착했다.
황토집을 장만할 지역을 들러보고 온 오빠는 컴퓨터로 다녔던 집들을 위성 사진을 통해 보고 계셨다.
'이곳은 집터 이곳은 밭으로 하려는데 어때 보이냐?' 물었지만 '오빠가 편하면 되지'하곤 컴퓨터 방을 빠졌나 왔다.
현명했던 올케언니만 있었어도 옆에서 큰 힘이 되었을 텐데~
암컷도 모르고 외동딸이라는 특혜의 응석받이로 부모님과 오빠들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내가 지금은 슬프기만 할 뿐이다.
늦은 밤 컴퓨터 방을 빠져나온 오빠는 간 탓인 듯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오빠 피곤해 보여 괜찮아~'
느닷없이 오빤 '너 왜 왔냐?' 하신다.
그만큼 몸이 피곤하신 게다.
말없이 방에 들어가신 오빠를 보고 내 맘도 편하지 않았다.
티브이를 잠이 올 때까지 멍하게 바라보다 한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잠을 청했다.
7월 22일
상당히 비가 많이 내리는 새벽 6시, 알람에 의해 눈을 떴다.
오늘 김해에 내려가야기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지만, 마음은 편치않았다.
오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컴퓨터에 앉아있었다.
주변에서 마늘 비트 미나리 흰민들레~ 등 간 해독에 좋다는 다양한 식품을 권장해준 식품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오빤 컴퓨터를 통해 간 해독에 빠른 효과를 한방재료로 봐야겠다며 찾고 있었다.
그렇게 오빠는 홀로 이겨 내보려 잠도 뒤로하고 한방약재 찾으며 아침을 맞았다.
그런 오빠를 두고 난 김해로 내려와야 했다.
창밖에 비가 내렸다.
전철역까지 오빠의 배웅을 받았다.
맘이 무거웠다.
집에 있는 남편도 걱정이 되지만 홀로 병과 싸우려 애쓰는 오빠도 걱정이 되었다.
기차에 올라 책장을 넘겼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전을 지나자 비는 멈춘듯했다.
그냥 그렇게 비 오는 창밖만 물끄러미 쳐다보며 무상무념인 상태로 18~22일 오빠 집 방문 일정을 마치며 낙동강줄기 따라 다시 비가 오는 구포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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