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물 폭탄 맞으며 구포역행

건강미인조폭 2020. 7. 31. 09:39

7월 30일
장마다.

장마는 전국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는 뜻 데로다.

 

김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9시 30분, 맑은 하늘을 보며 백내장 수술로 미장원에서 머리 감고, 머리에 힘고 주고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서려 할 때 먹구름이 쫙~~

 

에고~~~

 

불길한 예감을 그냥 지나지 않았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남의 눈 의식 않고 장화까지 갖춰 신고 문밖을 나서는 순간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최근 유행어가 된 물 폭탄~

물 폭탄을 맞아가며 김해 내동에서 127번 버스를 기다렸다.

처마 밑에 있어도 지나는 차량으로부터 물세례를 받고 비는 우산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그렇게 127번 버스를 기다리며 오는 비 뿌린 비를 모두 맞고서야 127번 버스에 탑승했다.
장화에도 물이 가득 흥건하게 차버렸다.

온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에 좌석에 앉을 수가 없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학생들도 젖은 상태로 의자에 앉는 걸 보고 미안하지만 나도 그냥 겁 없이 앉았다.

 


얼마나 갔을까, 많은 비를 맞은 탓에 몸이 추웠다.
준비해 간 긴 팔의 가디건을 걸쳐 입으니 조금 나아졌다.
사실 빗물로 젖은 엉덩이를 비롯해 몸에 옷이 밀착, 흉함을 감출 요량으로 꺼내입었다.
축축하긴 해도 조금씩 속옷은 말라가며 한결 편해졌다.


구포 기차역 내에 있는 화장실에 청소 아주머니께 물벼락 맞은 부분을 씻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발을 씻었다. 찝찝함이 한결 나아졌다.

 


난 무궁화를 타야 했다. 신탄진역에 하차하지 않는 ITX 새마을이 나를 남기고 떠났다.

 

 

열차는 폭우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비를 뚫고 돌진~ 하지만 물금읍쯤에서 비는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태양에 밀려나고 말았다.

 

무궁화 기차 내는 거리 두기가 새마을 같지 않게 연인과 친구가 탄 듯 둘씩 앉아 가기도 했다.
'음식물 자제해 주시고 마스크는 꼭 착용~' 방송 안내가 흘러나왔다.

 

캔 커피는 조심스레 '딱' 소리를 내며 뚜껑이 열렸다.

목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커피는 가방 안에 자취를 감췄다.

 

물금읍을 지나며 산 너머 해가 환하게 빛을 들어냈다.
승객들 눈을 피해 장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잠을 청해 본다.

 

 

잠시 눈을 뜬 곳은 경산, 언제 비가 왔느냐, 비아냥거리듯 뜨거운 태양이 내리 쪘다. 커튼을 쳤다. 답답해 다시 젖혔지만, 뒷사람이 불편할 수 있겠다 싶어 커튼으로 태양을 가리고 여행용 가방 안에 넣어 온 구두를 꺼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져 보기도 했다.


눈 수술로 아예 책은 담아 오지 않아 지루했다.
동대구란다.
그냥 눈의 안정을 위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눈을 뜬 곳은 구미였다.
아직도 한 시간 반가량을 더 가야 했다. 잠시 멈출 때 가방 속에서 구두를 꺼내 장화와 바꿔 신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 구두는 성수도 수제화 거리에서 수제화를 만들었던 헌혈봉사원이 준 선물이었다.
지나온 역이 많을수록 아들 며느리에게 다가감에 흥분되었다.

 

앞으로 한 시간 만 가면 될 텐데, 그곳 하늘은 어떨까, 햇볕 아니면 물 폭탄, 물벼락~
항간에서 며느리의 톡 메시지를 받았다. '어머니 조심히 오시고 잠시 뒤에 봬요~'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흐리며 먹구름이 나타나며 어둑어둑해졌다.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또 물 폭탄~???

 

영동쯤에서 며느리로부터 톡 메시지를 다시 받았다.
그곳 하늘은 무사하다고~~

 

금강물 줄기는 이번 비가 뿌린 흔적이 흘러내렸다.

 

 

아들 며느리가 있는 대전이다.
하지만 청주서 출퇴근하는 며느리 차가 퇴근길에 만나기로 했다.

 

역마다 하염없이 정차하며 무궁화 열차는 한참을 달려 신탄진에 내려주었다.
오는 동안 달리는 열차에서 일일이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곳곳에 물 피해 현장을 보며 2년 전 영덕에 봉사활동이 머리를 스쳐 가기도 했다.

 


신탄진 역에서 며느리는 마중 나와 '어머니 보고 싶어 퇴근도 서둘러 했다'라며 기염을 토해냈다.
빈말이어도 예쁘게 말해주니 더 예뻤다.
부창부수~ 아들은 집에서 불고기 요리를 준비 중이란다.
시어미 온다고 이른 아침, 김칫국을 끓여 놓고 출근한 며느리~

 

아들 내외는 저녁상 차린다고 손이 바빴다.

 

버섯 많이 넣어 당면도 넣어 제법 비슷한 맛을 내어주었고 김칫국은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끓인 것이 잘못하여 김칫국이 되었지만 심심하고 맛이 있어 정말 국같이 난 두 그릇이나 먹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행복한 시간으로 며느리와의 작은 추억을 만들며 보냈다.

 


USB에 담긴 지난 영상을 대형 티브이 브라운관으로 보며 밤을 보냈다.

 



7월 31일
아들 집임에도 일찍 잠이 깨었다.

 

오늘은 전국헌혈봉사회에 모임으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오후 1시 30분까지 가야 했기에 기차를 타고 영등포로 향해야 했다.

 

새벽 6시 남해 봉사원은 첫차를 타고 서울 모임 장소에 오른다는 톡 메시지가 떴다.

 

일찍 눈이 뜨인 나는 커다란 티브이 대전뉴스에서 많은 비로 침수되거나 손해 입은 수해 자들을 비추었다.

 

두유로 아침을 대신하며 며느리는 청주로 출근하고 아들은 나를 태워 신탄진 역까지 배웅을 받았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아들 집 방문을 마치고 오른 무궁화 열차는 출근자들과 좌석에 한 칸씩 자리해 거리 두기를 하며 영등포역에서 올케의 마중을 받고 집으로 향해 ‘마약 계란장’과 함께 따듯한 아점을 하고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헌혈세미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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