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벌초

건강미인조폭 2021. 9. 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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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나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싸고 이사한 아들 집도 다녀올 생각에 이것저것 챙겨 0430분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가는 비를 뿌린 고속도로는 이른 시간임에도 벌초 행렬인 듯 생각보다 많은 차량이 함께 달렸다.

 

장거리를 달릴 때면 트로트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가수 나훈아 노래를 들으며 달렸다. 

대구 대부쯤 지날 땐 안개가 심했다. 남편은 안전 속도에 맞춰 운전해주었다.

 

0612분 전화 핸드폰 벨이 울렸다. 어깨 아픈 아버지를 돕겠다고 아들이 내려오고 있다는 전화였다.

예초기도 장만했고, 4일 전 아들이 대전을 벗어나 세종으로 이사를 했기에 짐 정리를 하라며 오지 말라고 만류했었다.

그런데도 어깨 통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돕게 다고 소리 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안개 속 태양은 언제 떠올랐는지 붉은 태양으로 깜빡 잠에서 나를 깨웠다. 그 태양은 우리를 향해 따라왔지만, 안동 부근에서 다시 안개에게 양보했다.

 

아들과 우린 각각 마지막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0659분 안동 서의문 통과하며 아들과 비슷한 시간에 산소에 도착하였다.

사실 아들은 하루 전인 어젯밤 내게 전화를 했었다. 아들이 내려옴을 아버지 모르게 해달라며 서프라이즈를 한 것이다.

 

아들이 왔다는 소리에 맘이 편하다며 남편은 싱글벙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뭐기에, 자식이 뭐기에 저리 기분이 좋아질까??? 그걸 알까???

 

산소에 도착하니, 주변을 멧돼지들이 지키고? 있었는지 상당한 발자국이 있었다.

잔디는 제법 자라있었다.

 

난 재단에 음식을 우선 올리고 우산으로 뙤약볕을 가려놓았다.

남편은 예초기를 아들은 갈퀴를 각각 들었다. 5분 지나 아들과 남편이 벌초 기계를 바꿔 들었다.

아들이 예초기를 든지 1~2분이 지났나? 예초기 나사가 풀리며 행방을 감춰버렸다.

난감한 두 부자는 부모님의 산소를 낫으로 베기 시작했다.

아들은 낫을 잡아본 적이 없어 어설픈 낫질을 하면서도 아버지를 도왔고 그런 아버지는 아들이 다칠까 아픈 어깨를 쓰며 어린 시절 해봤던 솜씨로 손목에 스냅을 줘가며 빠른 속도로 봉분과 옆에 계신 큰 시숙 묘비까지 벌초를 마쳤다. 힘겨워하는 남편은 바닥에 주저앉아 마무리 벌초를 했다.

 

미리 차린 제사음식으로 부모님께 제를 마치며 가족의 건강을 빌기도 했다.

 

믿었던 예초기, 여분의 볼트가 없어 힘겹게 낫질을 한 뒤, 깔끔하게 단장이 된 부모님 산소를 보니 뿌듯했다. 개인택시를 하며 얻은 직업병으로 어깨통증을 앓고 있어 예초기를 장만하며 믿고 산에 왔건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볼트가 튕겨 나가 낫질을 해야 했고 만삭인 며느리를 도와가며 이사까지 한 피곤한 몸으로 자식 노릇 하겠다고 단걸음에 산에 와서 잡아보지도 않은 낫질한 아들, 두 부자의 노력에 살짝 박수를 보내 본다.

 

10월에 태어날 손자 소식을 안고 다시 부모님을 찾게 노라고 말씀 올리고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아들 차량을 따라 세종시의 아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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