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954

화상

2월 3일 오래 누워있으면 생기는 욕창, 오빠는 화상이라고 표현했다. 새벽 4시 엉덩이에 붙인 파스로 따갑고 뜨거워 잠이 깨며 괴로워했다. 파스를 떼고 물수건으로 등부터 닦아주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새벽 4시경 물 반 컵을 마셨다. 잠결에 물을 전하고 '앗 차' 금식을 알았다. 아침 7시쯤 화상부위가 따갑다고 속옷을 내리고 계셨다. 정신 차리고 물수건으로 닦아드리며 간호사들은 또 다시 파스 같은 걸 들고 왔다. 소독하고 다른 파스로 응급치료를 한 상태에 내가 지니고 다니는 비상약도 발라드렸다. 스텐트 시술을 하는 관계로 오늘 재활치료는 건너뛰었다. 시술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술실 앞에 앉아 기다렸다. 부처님을 향해 오백나한 명호를 부르며 소리 없이 기도도 드려본다. 정신없는 시간은 양말도 ..

왜 수면제 안 먹었어요?

2월 2일 '왜 지난밤 수면제 안 먹었어요?' 지난밤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이게 이유가 될까? 그제 저녁 수면제(마약종류)로 환각상태 되는 걸 막으려고 안 먹었는데, '잘 주무셨으니 다행입니다' 가 아니고 '왜 안 먹었냐.'고~~ 다행히 지난밤은 두세 번 깨고는 잘 주무셨다. 환자는 늘 의사들의 시험상태일 것이다. 아침 9시 암환자를 위한 재활치료가 진행 되었다. 종일 누워 있는 환자들을 위해 굳어가는 근육을 풀어주는 듯했다. 그 사이 큰 조카가 공장 일보고 나와 오빠를 기다렸다. 개운한 듯 시원한 듯, 30여분 후에 재활치료는 마쳤고 아버지와 아들은 사업이야기를 나눴다. 점심 때 막내올케는 불고기전골과 매운 순두부찌개를 주문해 들고 왔다. ‘형님생신 축하해요.’ 하며 금일봉을 통장에 입금시키며 컵 떡..

환각상태로 괴로운 아침을 맞으며

2월 1일 지난밤 9시경 먹은 병원서 준 수면제 복용으로 환각상태를 일으킨 지난밤은 폭풍 같은 밤을 보냈다. 12시 05분 팔에 근육주사 맞음 한참을 일어나 앉기를 반복 간이침대에도 꼬꾸라져 잠을 청해봄 이내 침대로 이동 몸이 맘대로 안 됨 몸부림 자주 침 2시경 잠듦은 허우적대는 손짓은 자면서도 계속이어 졌고 일어나려 애를 썼다. 2시 20분 소변보고 소변 양을 메모하고 버리고 오니 스스로 물을 마심 3시 30분경부터는 손짓도 사라지고 잠이 든 듯했다. 5시 20분 혈액검사로 깸 6시 넘어 1층에서 엑스레이 찍음. 약 때문인지 말함이 잘 전달 안 됨 9시 시술 실 들어감 여전히 말 전달 잘 안됨 3시 30분경부터는 든 잠은 5시20분 링거 바꾸며 잠이 깼다. 7시 40분 ‘X레이 찍고 오세요.’ 간호사..

'공장 가보니 밥은 먹고 살겠든?'

1월 31일 수면제 없이 지난밤은 잤지만 더위를 이기지 못해 깨기도 했다. 더위를 이온음료로 이겨 보려 했지만, 준비 되지 않아 보리음료로 대신하며 아침을 맞았다. 평소 물수건으로 자주 닦아 달라던 오빤 올 아침은 닦지 말라며 귀찮아했다. 짜증 섞인 말까지 했다. 어쩌라는 건지~!!! 아침 9시 컵 떡국 국물을 먹어 본다던 오빤 조미료 맛이 받친다며 환자용 음료 한 캔을 15분에 걸쳐 천천히 마셨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다. 이렇게 잠을 많이 자도 되나, 싶을 만큼 잠을 자 걱정이 되었다. 11시가 넘어 큰아들 방문에 잠시 눈을 뜨며 새 공장에 여러 가지 문제점 등을 보고하곤 나도 다녀 오라했다. 공장을 가며 대표이사 자리에 앉은 큰조카에게 난 '호중아 공장을 키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까먹는..

섬망(환각상태)

1월 30일 오빠가 잠 못 들어 괴로워하는 중에도 날은 밝았다. 밤에 괴로워하며 했던 행동은 섬망(헛게 보이거나 환각 상태 됨)으로 오빠가 삼성병원에서 받은 수면제(스틸녹스정)는 모두 병원에 압수를 당했다. 오빠가 먹은 두 알 이상은 위험한 경우에 섬망 상태가 된다고 했다. 그로 인해 잠 못 자는 것을 포함해 정신의학과 치료도 받게 되었다. 우울증도 있다며 이곳에서 수면제를 제조해 준다고 했다. 정오가 되자 주말을 이용해 다음 주 생일인 나를 위해 대전서 아들 며느리가 올라와 주었다. 케이크를 묻기에 준비하려거든 간호사실에 줄 거로 사라 했다. 오빠가 잦은 진통제 호출로 귀찮은 환자이기도 할 것이기에 아부용으로 준비했다. 함께 만두전골을 먹고 봉투를 쥐여주고 케이크는 간호사들에게 나눠주며 아들 내외는 오..

감사패, 수면제

1월 29일 날이 차갑다. 서울은 더 추웠다. 오빠 집에서 혼자기에 썰렁함으로 냉기로 더 느껴지는 듯했다. 병원 가는 길, 거리는 빙판으로 발걸음을 떼기가 싶지 않았다. 찬바람으로 병원버스를 기다릴 수가 없어 택시로 병원에 도착했다. 어쩜 이토록 작은 나라의 날씨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모자까지 들쳐 써야 하는 아주 매서운 냉 추위였다 . 도착하자, 오빠를 간병하던 간병인은 보따리를 준비하고 길길이 바쁜 듯 나갈 태세다. 아직 3일이 남았는데~ 간병인은 밤새 잠을 못 잤다며 짜증스런 말을 전했다. 난 어리둥절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싶었다. 객관적으로 판단해서는 간병인은 환자에게 소홀했다. 오빠의 머리는 떡밥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감기지 않은 것이고 면도는 물론 세수도 씻기지 않았다 했다. 화가 ..

손자 안아 볼 수 있을까요.

1월 28일 새벽어둠을 가르며 남편의 도움으로 구포역에 도착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큰일 치루기 전까지 내려오지 말고 편히 모셔' 친정 일에 베려 해주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기차에 올라 잠부터 청했다. 잠은 구미에서 깨고 잡생각을 하며 대전을 지나자 머리는 맑아졌다. 천안을 지나자 눈발이 날렸다. 잠깐사이에 눈은 상당히 쌓여갔다. 군포 쥔장 없는 빈집, 오빠 집에 도착했다. 상당히 낯설었다. 병원에 가져 갈 물건들을 챙기고 먹기를 바라는 희망을 갖고 나박김치국물도 챙겼다. 파김치도 그냥 쥔장을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잠간사이에 온통 흰 세상이었다. 까다로운 절차를 밟고 오빠가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오빠 나 왔어' 하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준비해간 물건들을 이리저리 정리했다. 오빠는 '..

한샘 싱크대 상판 A/S

1월 27일 내일 서울에 오르면 오빠 멀리 보내드리고 내려와야 하기에 홀로 생활하는 남편이 불편하지 않도록 입을 거, 먹을 거, 준비도 하며 음식 통마다 메모도 잊지 않고 해 두었다. 언제 손상이 갖는지 알 수 없지만 19년 2월 리모델링을 한 주방 싱크대 상판에 문제가 생겨 오늘 A/S를 받는다. A/S기간이 2년까지여서 내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기사분의 손질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기사분의 정성에 나름 감사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는 오빠사진들을 골라 장수사진도 만들었다. 영정사진을 장수사진이라고도 하지만, 영정사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조카들이 준비를 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을 위해 내게 있는 장례 상조보험증서를 들고 가기로 했다. 거북공원의 나무들은 봄을 맞이하는데 오..

너 가면 나는 어떡하니!

1월 26일 김해 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밤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빠져나올 때 ‘너 가면 나는 어떡하니!’ 했던 말과 오빠 표정이 머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목요일 서울에 오르면 드시고 싶었던 음식을 다져서 드려야 할까? 특히 좋아했던 곰보빵과 나박김치 국물, 내가 담아놓은 나박김치는 맛도 못 보고 입원을 했기에 냉장고 내에서 주인을 그냥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빠 보는 앞에서 곰보빵을 갈고 나박김치 국물과 가져다드릴까? 아님, 미음과 점심에 드시도록 해봐야겠다. 경기도 봉사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후원자로서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14년간 후원하고 있어 가끔 봉사원 임원들은 지역을 위해 후원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에 음료수라도 들고 오빠를 찾아가면 '쓸데없이..

곰국

1월 24일 집에 오니 잠만 쏟아졌다. 오빠 생각에 빨리 서울을 올라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무거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친구 순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병간호에 고생했다면 점심을 사준다는 것이다. 울 오빠 내가 병간호한 건데 친구가~~~ 말이라도 고마웠다. 누가 밥을 사면 어떨까, 늘어지는 잠에서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불고기 전골을 대접받았다. 점심 대접을 받으며 다시 오빠 병간호로 서울을 오르면 홀로 식사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곰국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표현 안 하고 친정 일에 도움을 주니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몇 가지 찌개와 밑반찬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눈이 따갑다. 잠을 더 자야 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까지 잠에서 깨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