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나의 일상 954

황달

1월 13일 오빠 집에 오빠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잠을 자며 아침을 맞았다. 사실 무섭기도 해서 두세 번 깬 듯했다. 남향으로 새벽부터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제 내린 눈으로 흰 세상은 눈이 부셨다. 눈길에 조카들은 무사히 출근하는지 살짝 걱정도 하며 새집에 걸레질하며 세탁기를 돌렸다. 잠시 방마다 정리는 잘 되었는지 확인을 하며 문제점들을 조카들에게 알리고 큰조카를 맞으며 그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큰조카는 '고모가 고생이 많네요' '호중아 넌 모를 거다. 네가 3~4살 때 전자공장 하청업체를 할 당시 어음 발행으로 현금이 손에 들어오지 않아 살림의 어려움을 네 아버지가 선 듯 십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주셨단다. 지금 그 돈 가치는 많은 금액이었지. 돈을 줘도 받지도 않고 이번에 그걸 갚..

오빠 없이 집 이사

1월 12일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그냥 새벽 5시경 일어나 중요한 물건은 잘 쌌는지 다시 확인하며 내 여행 가방도 따로 싸고 7시 반경 도착한 작은 조카 차량에 내 짐을 옮겨두었다. 병원서 하룻밤을 보낸 남편은 이삿짐 옮기면 바로 김해 내려간다고 보채는 전화가 왔다. 누워계신 오빠 옆에서 뭐라도 할 일이 없어 좀이 쑤셔 못 있게 다는 게 남편의 말이다. 간병을 해본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출근 차량에 막내올케도 일찍 와주었다. 이삿짐 차량이 오면서 오빠 없는 집 이사는 내 가슴에 서운함만이 몰려왔다. 오빠 친구 두 분(용국, 종석)도 이른 시간부터 오셔서 나를 응원해주었다. 난 오빠 없는 친구 두 분 오빠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삿짐은 추위 속에 옮겨지고 군포 공장 부근에 얻은 ..

적십자 후원 금장 유공장, 두 번째 스텐트 시술

1월 11일 지난밤 남편과 오빠 집에 올라와 잠을 자며 병원에서 조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통에 시달리던 오빠가 죽고 싶다고 하고 간병인 쓰고 아들마저 가라고 호통을 치셨다며 연락을 주었다. 난 '고모가 네 아버지에게 도움 드리려 적십자봉사도 탈퇴하며 와있는데 왜 그런 약한 소리를 하냐 네 아버지 집 이사로 고모 대신 낼 고모부가 병원 가고 이사 뒤에 고모가 간다고 약한 마음 먹지 말라고 해라.' 조카에게 울분을 터트렸다. 오빤 어느샌가 나를 의지하고 있었고 남편이 간다는 말에 남편의 수고가 싫어서 한 말이란 걸 내가 모르겠는가. 그렇게 남편과 오빠 집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으며 남편은 오빠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난 내일 이사하는 오빠 집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오빠 방에서 낯익은 상장을 발견했다..

혼자정리

1월 9일 오늘 오빠 간병하는 것을 큰 조카와 교대하기로 했지만, 소소한 것들을 치우기 위해 교대 못하고 종일 치우고 싸고 집안정리를 했다. 큰 조카는 출산을 앞둔 조카며느리를 친정에 보내고 병원을 지키기로 했다. 난 3일 뒤에 이집의 쥔장 없이 혼자 이사를 해야 하기에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삼시세끼도 다 차려먹었다. 오빠 침대덮개, 파자마, 이불 등도 빨아 정리를 해두었다. 혼자 이방 저 방을 살피며 주방 쪽을 더 정리하며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기도 했다. 다 늦은 저녁, 쓰러지듯 거실에 누워 TV 속 대중가요를 보며 잠이 들었다.

대성통곡

1월 8일 오빤 밤새 지친모습이 영역했다. 오빠의 통증은 ‘지난번 삽입한 스탠드까지 암이 생겨 오빠를 괴롭힌 것 같다’며 ‘날이 밝으며 스탠드를 다시 삽입합시다.’가 답이었다. 보호자로서 비좁은 응급실 의자에서 밤을 새우며 오빠의 착잡한 심정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실이 없어 날이 밝아도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다. 어제 저녁도 못 먹은 날 위해 아침밥을 먹고 오라는 특명을 받고 당당히 먹고 오겠다, 말하며 식당으로 향해 순두부백반을 먹었다. 통증으로 식사를 할 때면 밥을 앞에 놓고 ‘이건 먹는 게 아니고 퍼 넣는 거다,’ 라고 말했었다. 나도 그런 심정이다. 간병을 위해서 내 체력도 지치면 안 되기에 나도 퍼 넣었다. 곧 이사 가는 일로 짐정리를 위해 낮에 조카와 교대를 하며 올케를 불러 오빠 집으..

결국 응급실 찾아

1월 7일 거실 밖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지난밤에 찍은 자리에서 설경을 또 찍어보았다. 하얀 눈은 깨끗하고 마음까지 정화되듯 상쾌했다 오빤 무슨 일인지 분주했다. 한참 뒤에 화장실 가기가 어렵다했다. 주방정리를 하며 버려도 되는지를 묻자, 묻지 말고 그냥 버리란다. 점심수저를 놓고 냉장고 두 대를 청소했다. 오빤 엄동설한에 갑자기 나가자고 했다. 눈 쌓인 서울 길을 어찌 가려고~ 오빠의 체력으로 난 간병인으로 따라가는 거지만 운전까지 오빠가 하신다고 했다. 저 힘이 어디서 나는 걸까? 대표이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 힘을 쏟는 듯했다. 난 그저 참아내는 모습에 눈물만이 흘렀다. 오후 공장을 다녀 온 오빤 구역질을 했다. 겁도 났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며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로 입원준비를 하..

아직 할일이 남아서~~~

1월 6일 오빤 전복죽으로 식사하며 동치미보다 나박김치를 먹고 싶다 했다. 조카들이 반찬가게서 사서먹는 파김치에 젓가락이 갔다. 천천히 아주 오래 위를 다스려 가며 식사를 하신다. 식사 중에 아침 8시 큰조카가 출근 전 방문했다. 공장 일을 보고하고는 질부출산일을 이야기 했다. 15일 오전 8시30분 제왕절개 수술 날짜가 잡혔다. 무슨 이런 일이 있는지....... 보고를 마치고 출근하며 하는 말 '고모 손자는 보실 수 있겠죠?' '그럼 아버진 강한분이니까 걱정 말거라.' 나도 슬픈데 큰 조카가 걱정 섞인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조카를 보내고 마트에서 나박김치 재료와 쪽파를 나왔다. 내가 담근 나박김치와 파김치를 다 드실 수나 있을까! 순간 ‘견디기 힘들다며 입원해야겠다,’ 며 서둘렀다. ‘이제 집에 못..

또 다시 간병으로 오빠 집에 오르며

1월 5일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 잠을 설쳤다. 새벽임에도 부지런한 남편 탓에 남편의 배웅으로 구포역에 새벽 6시10분에 도착했다. 어제 조카로부터 받은 전화는 더 이상 병원입원마저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오빠 심정은 어때 을까! 암이란 게 정신은 멀쩡하고 먹지 못해 말라가며 통증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는데 오빤 마지막 고리라도 잡고 싶어 입원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받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늘 오르면 난 할일이 많을 걸 안다. 간병과 오빠 집 이사 그리고 오빠 큰 며느리, 내겐 조카며느리인 영애가 출산을 한다. 또 작은조카도 한주 뒤에 이사를 하고, 두주건너 오빠공장 이전~ 어찌 이런 일이 이렇게 겹칠까............. 새벽추위를 국밥으로 달래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대합실에 올랐다. 코로나..

2021 새해 아침

1월 1일 새해를 알리는 사진과 연하장이 톡을 통해 날아들었다. 동생도 아파트에서 찍은 새해 해맞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들 부부는 하룻밤을 보내고 대전으로 올라가야 했다. 새해맞이 떡만 두 국을 끓여 먹고 어젯밤에 만든 간장게장을 싸서 올려보냈다. 새해라는 이유로 직장 일에 쫓기면서 무리하게 내려온 아이들이었다. 같이 있으면야 좋지만 나도 피곤했다. 공휴일 연휴 아이들도 푹 쉬라며 올려보내고 쏟아지는 잠을 늦은 저녁까지 잤다. 남편은 그런 날 깨우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보니 대전에 오르는 아들은 엄청난 눈이 내린다는 영상이 카톡으로 날아들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 남편에게 어제 담은 간장게장과 저녁 식사를 해드렸다. 다행히 간장게장은 맛이 있었다.

2020 마지막 밤을 보내며

12월 31일 아침에 견과류 죽을 준비해 두었다. ‘오빠 나, 김해 내려가면 뭐해 놀까?’ ‘김치찌개 해놓고 가렴.’ 지난밤 오빠께 물어보고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끓였다. 다행히 아침에 견과류 죽 대신해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드셨다. ‘곧 큰며느리가 손자를 놓고 백일이 지나면 오빠 생일이네, 오빤 강하니까 그때까진 끄떡없을 거야 그래야 나중 하늘나라에서 언니를 만나도 손자 이야기할 수 있잖아. 김해 내려 갔다 올게.’ 인사를 했다. 오빤 나보다 먼저 힘없는 다리를 끌고 공장에 주문한 기계가 완성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친구와 보러 나가셨다. 이곳 안양에는 오지 않은 눈이 수원역을 지나가는 기차에 하얀 눈이 묻어있었다. 신탄진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라 천안을 지나자 언제 그쳤는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