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4

우리 아들 좀 도와줘

2월 15일 까만 밤, 시간마다 오빤 잠을 깨웠다. 자다 말고 잠이 안 온다며 수면제도 먹었다. '일 생기면 걱정하지 말고 알려라, 진정제 놔 달라 해라.'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지만, 통증으로 인한 약물로 섬망인 듯했다. 시간마다 잠이 깨며 새벽 6시 거동도 힘들어 이동 침대로 1층 X레이를 찍고 왔다. 지난밤의 일들을 들은 회진하는 담당의사는 암 환자들이 하는 행동 중에 하나며 다행인 것은 염증 치수가 내려갔지만, 콩팥이 안 좋아지고 있고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게 될 거라고 했다. 암튼 통증만 없게 해달라고 했다. 오빤 모든 커튼을 치라며 컴컴한 상태로 잠이 들 곤했다. 공장을 부탁한 친구 용국 오빠가 다녀갔다. 묻는 말에 엉뚱한 말을 하던 오빤 순간 정신을 차리곤 '호중(큰아들)이 좀 도와줘 잘 부탁..

환각상태

2월 14일 두려움 때문인지 오빤 나를 밤새 잠을 못 자게 했다. 수척해진 몸에 열이 있어 환자복도 벗고 팬티만 입은 상태다. 딸내미 같은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어오기에 여름 반바지를 잎혀지만 덥다고 입지 않았다. 밤새 흉수관이 두 번이나 세서 나도 바빴다. 물마저도 먹지 못하니 가글, 입가심을 한 시간 간격으로 했다. '진통제 놔 주세요.' 간호사는 '네 몰핀으로 드릴게요.' 결국 오빠는 가끔씩 환각상태를 보이게 된다. 2인실 병실은 오빠 혼자가 되었다. 물도 못 먹는 오빠를 두고 난 옆 빈자리서 점심을 먹었다. 흉수가 자꾸 샌다. 벌써 3번째 거즈를 바꾸는 중에 큰조카내외가 갓난아이를 안고 문병을 왔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안아보지 못했기에 얼굴이라도 보여주려 조카가 온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병원..

구정 연휴

2월 13인구정 다음 날,남편은 새벽 조용한 길, 구포역을 향해 달려주었다.고맙고 미안해요~ 그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밥 잘 챙겨먹어요.' 란 말만 전하고 남편을 김해로 돌려보내고 쓸쓸히 구포역 대기실에서 기차시간을 기다리다 기차에 올랐다. 연휴 기간의 기차는 조용했다.조용한 기차에 앉아 잠을 잤다. 오빠 집에 도착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이곳 날씨도 봄날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만난 오빠는 체내 산소가 부족해 코에 산소기를 꽂고 있었다.오빠 작은 아들이 닦아 주었다는데 내가 가자 닦아주길 바랐다.옆으로 누워 있는 자세는 자주 바꾸기 싶지 않았다. 한쪽을 닦고 다른 한쪽으로 자리를 바꾸자는 말에 귀찮다고 했다. 작은 조카에게 인계를 받으며 '심하진 않지만 섬망이 나타날 겁니다.'..

전복장

2월 12일 구정 아침, 아들 며느리에게 세배를 받고 아들은 제외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니만큼 며느리에게 세뱃돈으로 금일봉을 전해주었다. 세상도 변하긴 변했다 싶다. 아들은 우리 부부 각자에게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해주었다. 세배를 받고 남편의 덕담을 들려주곤 난 뒤, 함께 떡 만두 국을 끓여 먹었다. 아들 내외에게 먹이고 싶어 오빠가 보내 주신 LA갈비는 찜해서 먹었다. 가족회의도 했다. 남편을 비롯해 아들 며느리까지 ‘외삼촌 병간호에 어머니 건강 해칠까 염려된다.’라며 ‘할 만큼 한 것 같다’라고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조금만 엄마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제 담근 전복장이 맛있게 익어갔다. 아들 내외에게 전복장을 들려 ..

윷놀이

2월 11일 정오쯤 아들 며느리가 도착했다. 한 아름 선물꾸러미를 안고, 사돈댁에서 보낸 문어와 전복도 함께 전달해주었다. 부산이 가까워 싸게 사 먹는 산 문어를 보내준 것이다. 남편에 도움으로 문어를 손질하고 문어는 좀 더 오래 살겠다고 긴 다리를 이리저리 펼쳐도 보지만 우리에게 지고 솥단지 안에 들어가고 말았다. 전복은 손질해 회로도 먹었지만, 양이 많아 전복장을 담았다. 늦은 밤에는 여자끼리 남자끼리 짝을 먹고 윷놀이를 하며 즐겁고 행복한 밤을 보냈다.

머리 커트 방법

2월 10일 집에 도착해서도 어둠 속에 자꾸 잠이 깼다. 잔기침도 해서 잠이 깨기도 했다. 오빠가 얼마나 아플까 그저 눈물만 흘렀다. 그리고 깬 시간은 오전 8시 남편도 지난밤 마신 술로 아직 잠자리에 있다. 집 안 청소하고 가래떡 찾고 머리 파마를 하며 남자 머리를 어찌 잘라야! 하는지, 문의도 했다. 길게 자란 오빠 머리를 잘라 드릴 계획이다. 미장원 원장(외동-헤어스케치)은 친절하게 자르는 방법을 일러주었고 커트하는 남자분도 사진 찍는 걸 허락해주었다. 집에는 오빠 친구가 보낸 고기 세트와 오빠가 보낸 갈비가 도착하여 있었다. 병원에 누워 거동도 못 하면서도 누이를 위해 갈비를 보내준 것이다. LA갈비를 유난히 좋아했던 오빤데 병간호 하는 누이를 위해 보내준 걸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퇴근한 ..

김해 도착에 몸살

2월 9일 두 번의 헛구역질하며 지난 밤을 보내고 새벽 5시 김해 내려갈 준비를 하며 오빠의 얼굴과 머리 그리고 등을 닦아드렸다. 흉수가 또 샜다. 간호사에게 연락해 거즈를 바꾸는 사이에 퇴근한 작은 조카가 들어섰다. 오빤 '어서 가거라 기차 시간 늦을까 잘 갔다 와' 그리곤 통증으로 인상을 쓰며 잠을 청했다.' 오빠 갔다 올 게 다녀오면 인상 쓰지 말고 웃으면서 맞아줘' 그리곤 조카가 태워주는 택시로 수원역에 도착해 구포로 향했다. 조카는 콜을 부른 택시에 요금까지 계산한 상태였다. 기차는 아들이 살고 다니는 대전도 지나쳤다. 김해를 향해 타고 오는 기차 내에서의 4시간 동안은 가족을 만난다는 반가움보다는 오빠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만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구포에 도착하자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

패혈증

2월 8일 헛구역질이 잦아졌다. 울렁임의 괴로움을 입가심으로 입안을 씻어 내보며 헛구역질을 한다. 새벽 1시 5분 '수면제 먹어야겠다.' 며칠간 안 먹던 수면제를 찾았다. '오빠 3시까지 2시간만 참아보자, 잘 차던데, 수면제 먹으면 무섭게 변해서 그래, 참자' '니가 뭘 알아~ 잠 못 잔 내 심정을~' 많이 괴로운 듯했다. 얇은 코도 골며 자던데 습관적으로 먹어야 한다 생각한 듯했다. 수면제를 먹게 하고 까만 밤을 하얗게 보내며 아침을 맞았다. 아침 7시 12층서 1층으로 X레이를 찍으러 가는 것조차 울렁거림과 어지럼증으로 곤욕이었다. 이동 침대 도움을 받는다던 오빤 휠체어에 의지하고 촬영을 마치고 올라왔다. 9시 재활 치료는 쉬고 싶다 했다. 곧이어 십이지장 스텐트시술이 진행되었다. 한 시간 내에 끝..

오빠 집

2월 7일 이른 시간 눈을 떴다. 밤새 잠은 자도 자도 시간은 멈춘듯했다. 몸살이 회복 된 듯 가벼웠다. 6시 잠자리에서 티브이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빠 집은 썰렁했다. 먼저 안방 오빠 방부터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리곤 컴퓨터 방도 손님방도 베란다도 모두 열었다. 추웠지만 그건 잠시였다. 앞으로 이 집에 오빠가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듯 슬펐다. 아침은 먹을 생각 안 하고 정리만 하곤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일요일 거리는 조용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밤새 수고한 조카와 장례식장의 짧은 대화를 나눴다. 장례식이라도 큰 곳에서 모시고 싶다 했다. 그 마음은 알지만 얼마나 사신다고 숨을 쉬고 계실 동안이라도 모시라 했지만, 하룻밤 아버지 옆에서 자는 것도 갓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