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4

밤새 눈물로 지새웠다.

2월 24일 이사 온 집에 오빠는 없다. 흔적만 있을 뿐이다. 잠자리가 너무 이상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저 오빠의 임종이 다가옴에 안타까움 마음에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통곡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지난밤 오빠집이 너무도 무서워 빨리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아침 7시, 병실을 지키고 있는 조카에게 콜택시를 불러 달라 청했다. 덕분에 잠 못 이룬 무거운 머리는 단숨에 병원에 올 수 있었다. 오빤 하루하루가 다르다지만 전혀 움직임 없이 누워만 있었다. 그래서 오빠집서 내가 그리 두렵고 불편했나보다. 오빠를 확인하고 허리 한방 치료부터 했다. 기억 속에 거의 없는 한방치료, 부황을 뜨고 침을 맞았다. 그러는 사이에 오빤 오줌 호수가 새는 바람에 작은조카가 어렴을 겪고 있었다. 한방치료를 받고 병실을 찾아 침..

입원 한 달째

2월 23일 이곳에 머문 지도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도 오빤 우리들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젠 진통제도 싫다며 알 수 없는 손짓으로 어딜 가자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험난한 듯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답답한 몸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침대에서 보호자침대로 옮겨 자기도 했다. 오빤 간이침대로 여러 번을 옮겨 자는 것도 아플 텐데, 내 허리통증은 더 나대며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오빠를 침대로 옮기지 못해 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오빠 미안해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이번엔 오빠를 못 옮기겠어.' 오빤 빤히 쳐다보다 간이침대에서 한참을 자다가 결국 간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며 어려운 아침을 맞았다. 점심은 막내올케의 방문으로 불고기전골과 매운 순두부찌개를 각각 먹..

-DNR- (소생불가)

2월 22일 오빠 집서 눈을 뜨니 새벽 5시다. 더 자야지 하고 다시 눈을 뜬 시간은 5분전 6시다. 잠자리에서 무엇부터 할지를 생각했다. 몸은 좋아진 듯 했다. 이곳에 있어도 병원 상황을 잘 알기에 병원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빴다. 빨래로 요 매트부터 걷어서 준비하고 아침으로 가져온 누룽지탕을 물을 끓여 부었다. 누룽지가 불을 동안 오빠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도 방문하고 집 정리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버스정거장에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젊은 아가씨가 '이불보따리를 보고 묻는다며 어디 가냐'고 물었다. 그 아가씨는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 발열 체크하는 알바 생이었다. 덕분에 오천 원 나오는 거리를 이천 원만 주고 병원에 도착하는 행운을 얻었다. 작은 조카가 오빠를 안아 일으키고 눕히며 애쓰고 있었다. 지난..

몸살

2월 21일 땀범벅이로 아침을 맞았다. 몸살이 온듯했다. 그럼에도 김해 내려가야 하는 남편과 병원에 도착했다. 오빤 하루가 다르다. 오빠께 눈도장을 찍은 남편은 김해로 내려갔다. 큰조카는 오후 작은조카가 올 거라며 쉬고 내일 오라고 했다. 자기들 아버지기에 그리 할까 싶다가도 이왕 돕기로 한겻 돕자 마음먹었다. '오빠 씻어 줄까?' 오빤 '어~' 소리를 알 수는 없지만 해달라는 소리였다. 얼굴 머리를 닦고 준비해간 머리가위로 오빠께 말하고 양귀를 덮어버린 머리도 잘라주었다. 나름 깔끔해졌다. 큰조카는 장모님이 왔다는 전화를 받고 의정부 집으로 향하고 작은조카가 와주었다. 몸살기로 쉬라는 조카 말을 듣고 깔고 있는 요 패드에 이런저런 이물질이 묻어 빨래 가져오며 다시 오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

까만 밤 하얗게 지새며

2월 20일 오빠가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지난밤은 유난히 길었다. 어제 낮에도 잠 못 이룬 오빤 저녁 7시 10분에 진통제를 맞고도 잠을 못 이뤘었다. 오빠 소리에 깨면 0시 40분, 2시, 2시 30분, 50분~ 금방 잠이 든듯해도 미세한 소리부터 싸우는 듯한, 소리로 악몽과 싸우고 있어 쉽게 잠이 들지 않는 듯했다. 오늘은 조카딸(남동생 딸) 결혼식 날이다. 남편은 김해서 아들 내외는 대전에서 각각 올라오며 군포 오빠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악몽에 시달리는 오빠 옆에서 자지 못하고 이 시간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악' 소리에 오빤 다시 눈을 떴다. 옆 간이침대에 앉은 날 확인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가도 누군가와 싸우듯 대답도 아닌 '악~' 소리로 놀라듯 하며 꿈속에 있었다. 03시 20분 간호..

벌레 잡아라.

2월 19일 새벽 2시경 깼지만, 오빤 힘에 겨운 듯 다시 잠이 들었다. 밤새 조용했다. 다시 5시 30분 일어나고 싶다는 손짓에 이어 물을 1/3가량 마셨지만 구토를 하고 말았다. 흔한 물도 마음껏 마실 수가 없었다. 오늘 빼겠다는 배의 복수는 다행히 많이 차지 않아 빼지 않았고 더 지켜보기로 했다. 점점 움직임이 작아져서 슬플 뿐이며 힘겹게 간이침대에 옮겨 앉아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오빠가 종일 잠을 못 주무셨다 새벽5시30분, 17시, 19시10분 오늘 세 차례 진통제 맞으시고도 잠을 못 이루시고 잠시 전 19시 20분에는 옷에 벌레 들어갔다고 벌레 잡으라고 까지 했다. ‘섬망’이란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눈을 떴다 감았다 도 했다. 주사 맞으신 것도 모르시고 진통제 또 놓으라고도 했다. 벌레 ..

이달 말 고비

2월 18일 새벽 2시 이후 몰핀을 맞고 5시20분 잠이 또 깨었지만 잠을 못자며 통증으로 진통제(몰핀)를 찾으며 오빤 여전히 비몽사몽, 다리가 싸늘해졌다. 주사를 맞고 잠이 든 듯, 살포시 얇은 담요를 덮어 드렸다. 다행히 평소와 다르게 얇은 무릎담요 한 장도 무겁다더니 오늘은 편히 잔다. 그런 오빠의 모습에서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려나 하는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오늘도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2인실에 별난 환자가 한방식구로 시끄럽다. 조용히 자던 오빠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아침 회진하던 담당과장은 '염증수치가 높아 다른 약을 써보겠지만, 이달 말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죠.' '아~!!! 어쩌나.' 결국~ 의사를 믿자. 누구나 한번은 가는 거지만 단지 오빠가 먼저 가는 거..

순댓국

2월 17일 새벽 2시 30분 오빠 소리에 잠이 깼다. 힘겨움의 고통 속에서 싸워 지쳐가고 있는 오빠의 얼굴은 더 이상 우리 오빠가 아니었다. 모두가 잡고 있는 오빠의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온 듯 했다. 그래도 주말 조카 딸내미 결혼식까지 만이라도 버터 주었으면 했다. 아침이 밝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밤은 오빠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낯선 환자로만 보이는 밤이었다. 우리들 마음도 비워야겠다.' 라고~~~ 담당과장의 회진이 있어도 오빤 바라만 봤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또한 움직임이 더 작아졌다. 정오, 올케가 장조림과 고사리 무침을 준비하며 순댓국을 사왔다. 암 병실에 갇혀 살며 오빠를 피해 12층 높은 곳 휴게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다 보니 순댓국은 깔깔한 입맛을 덕분에..

울 아들부부 임신했지만 조용하게

2월 16일지난밤도 오빠는 90분 간격으로 잠을 깼다11시50분, 0시40분, 02시30분, 04시, 04시40분~물조차 먹지 못하니 입가심(가글)을 위해 깬다. 거의 약기운에 잠을 자면서도 새벽4시40분에는 '2시간만 자게 해 달라.'라고 했다. ‘새벽녘인데, 오빠 나 조금만 더 잘게. 나도 좀 자자. 아님 오빠 나랑 놀자.’ 잠도 맘대로 못 자게 하니~‘  결국 새벽에도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가 지고 결국 몰핀을 맞고 말았다.암환자들이 마약에 의존하다보니 눈뜨면 섬망인 상태로 환각에 사로잡혀 헛소리를 하게 된다. 오빠와의 실랑이로 아침을 맞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수건으로 닦아드렸다오른쪽 귀도 약간, 오른쪽 목에도 산소기 줄에 눌려 붉게 눌려있었다. 힘이 없어 소변 줄에 의존하기로 했다.오빠 그 기억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