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4

손자 안아 볼 수 있을까요.

1월 28일 새벽어둠을 가르며 남편의 도움으로 구포역에 도착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큰일 치루기 전까지 내려오지 말고 편히 모셔' 친정 일에 베려 해주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기차에 올라 잠부터 청했다. 잠은 구미에서 깨고 잡생각을 하며 대전을 지나자 머리는 맑아졌다. 천안을 지나자 눈발이 날렸다. 잠깐사이에 눈은 상당히 쌓여갔다. 군포 쥔장 없는 빈집, 오빠 집에 도착했다. 상당히 낯설었다. 병원에 가져 갈 물건들을 챙기고 먹기를 바라는 희망을 갖고 나박김치국물도 챙겼다. 파김치도 그냥 쥔장을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잠간사이에 온통 흰 세상이었다. 까다로운 절차를 밟고 오빠가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오빠 나 왔어' 하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준비해간 물건들을 이리저리 정리했다. 오빠는 '..

한샘 싱크대 상판 A/S

1월 27일 내일 서울에 오르면 오빠 멀리 보내드리고 내려와야 하기에 홀로 생활하는 남편이 불편하지 않도록 입을 거, 먹을 거, 준비도 하며 음식 통마다 메모도 잊지 않고 해 두었다. 언제 손상이 갖는지 알 수 없지만 19년 2월 리모델링을 한 주방 싱크대 상판에 문제가 생겨 오늘 A/S를 받는다. A/S기간이 2년까지여서 내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기사분의 손질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기사분의 정성에 나름 감사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는 오빠사진들을 골라 장수사진도 만들었다. 영정사진을 장수사진이라고도 하지만, 영정사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조카들이 준비를 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을 위해 내게 있는 장례 상조보험증서를 들고 가기로 했다. 거북공원의 나무들은 봄을 맞이하는데 오..

너 가면 나는 어떡하니!

1월 26일 김해 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밤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빠져나올 때 ‘너 가면 나는 어떡하니!’ 했던 말과 오빠 표정이 머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목요일 서울에 오르면 드시고 싶었던 음식을 다져서 드려야 할까? 특히 좋아했던 곰보빵과 나박김치 국물, 내가 담아놓은 나박김치는 맛도 못 보고 입원을 했기에 냉장고 내에서 주인을 그냥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빠 보는 앞에서 곰보빵을 갈고 나박김치 국물과 가져다드릴까? 아님, 미음과 점심에 드시도록 해봐야겠다. 경기도 봉사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후원자로서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14년간 후원하고 있어 가끔 봉사원 임원들은 지역을 위해 후원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에 음료수라도 들고 오빠를 찾아가면 '쓸데없이..

곰국

1월 24일 집에 오니 잠만 쏟아졌다. 오빠 생각에 빨리 서울을 올라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무거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친구 순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병간호에 고생했다면 점심을 사준다는 것이다. 울 오빠 내가 병간호한 건데 친구가~~~ 말이라도 고마웠다. 누가 밥을 사면 어떨까, 늘어지는 잠에서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불고기 전골을 대접받았다. 점심 대접을 받으며 다시 오빠 병간호로 서울을 오르면 홀로 식사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곰국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표현 안 하고 친정 일에 도움을 주니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몇 가지 찌개와 밑반찬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눈이 따갑다. 잠을 더 자야 했다. 남편이 퇴근하기 직전까지 잠에서 깨지를 못했다.

퇴원하고 입원하고

1월 23일 병실을 함께 쓰는 옆 환자는 코골이가 천둥 같았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허리통증은 더 나댔다. 새벽 4시 오빠의 진통제 맞으며 깬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고요가 흐르는 긴 복도 통로를 성큼성큼 걸었다.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대기실에 앉아 정적을 깨며 티브이도 켜봤지만, 허리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복도를 걸으며 '너 없으면 불안하다'라는 오빠를 위해 병실도 들여다보고 다시 돌고 800여 걸음을 걷고는 커피를 타서 마시며 오빠 옆을 지켰다. 날은 좀처럼 밝아지지를 않았다. 이곳을 퇴원하고 지샘병원으로 옮기고 오후에 김해에 내려갈 예정으로 가방을 싸고 아침 미음을 드신 오빠에게 오늘 가면 며칠 있어야 하니 5분만 기운 내고 머리부터 닦아 줄게.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

귀마개

1월 22일 밤사이 종이컵으로 2컵 반 정도와 환자용 음료 반 컵을 마셨다. 오빤 몸속의 염증 탓인지 미열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몸을 닦으라고 깨웠다. 2인실은 옆 환자는 지진이 날듯 코를 골았다. 다행히 간호사실에서 귀마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잠들기가 어려웠다. 정상인이 이런데 오빤 어떨까 싶다. 난 몸살이 난 듯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오빠 는 나만 보면 닦아 달라지만 점점 뻔뻔해진다, 며 이곳저곳 닦아달라고 난 자꾸 꾀가 생긴다. 오빠 피해 복도를 서성거리게 된다. 이곳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 며 요양병원을 추천했다. 그중에 오빠 집 부근에 있는 지샘병원도 있어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빤 더 움직임이 작아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오빠가 왜 저리되어 는 지, 마음이 너무..

피곤해, 격리실

1월 21일 병원 응급실서 새날을 맞았다. 밖에서 4시간을 떨며 지난 밤 10시 응급실 실내로 들어오니 뜻하지 않게 열이 38°나 되었다. 이상해서 잠시 후 또 쟀다. 37.6° 몸에 염증 탓이겠지 하고 한 시간여를 잔 뒤 다시 재니 혈압도 체온도 정상이었다. 코로나는 검사했지만, 고열로 격리실에 입원했다. 티브이 뉴스에서 보던 격리실이었다. 이 밤은 의자에서 날을 새지 않아도 되었다. 2시에 잠은 4시에 통증으로 깨었다. 이 밤도 편한 잠은 잘 수 없었다. 응급실서 새벽 2시에 뉴스서 보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맨 간호사들이 격리실로 우릴 이동해서 체온이 37.6° 나온 이유로~ 물론 체온은 30분도 안 돼서 정상이지만~ 잠시 열이 올랐던 이유로 응급실에서부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격리실 이동 후..

응급실 대기 환자 복잡

1월 20일 아침이 밝았지만 꿈인지 아침인지 그냥 멍한 아침을 맞았다. 오빤 눈만 뜨면 마시지를 원했다. 약간의 미열이 나왔지만, 병실도 더웠다. 지난밤도 물수건 마사지를 해드리며 보낸 탓에 멍한 아침을 맞게 되었다. CT 결과가 나왔다. 스텐트를 빼야 할 것 같단다. 결국, 시술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사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종사촌까지 오빠 건강안부전화가 쇄도했다. 난 허리통증 물리치료를 금요일까지 받으려 했지만, 그것부터 취소하고 오빠의 퇴원을 도왔다. 내일은 오빠의 작은아들이 이사하는 날로 공장에 있어야 할 큰아들이 운행해주었다. 병원 가는 자네에 서도 오빤 큰조카에게 '네 고모 다시 봤다. 날 돌보는데 실은 내색 없이 편하게 해주는데 고모 같은 간병인을 이틀만 불러라' 했다...

더위를 물수건으로 식히며

1월 19일 새벽부터 덥다 춥다를 반복했다. 추우면 이불을 덮으면 되었지만 더우면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달라셨다. 두 번까지는 버티지만, 허리통증으로 세 번은 힘이 들었다. 오빠지만 꾀가 생기려 했다. 공장 이전에 도움을 줄 용국이 오빠가 왔다.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문병을 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난 허리통증으로 버티기가 힘들어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올케를 불렀다. 하지만 오빤 제수씨한테도 오빠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했다. 오히려 불렀다고 원망했다. 올케는 밥을 못 먹는다며 나를 위해 주꾸미 볶음을 사 왔다. 매웠지만, 조카들보다 나은 점이 이런 것이었다. 그렇게 올케는 갔고 오빤 여전히 잠만 잤다. 퇴근 시간 무렵 담당과장은 CT 결과를 들고 왔다. 결과가 슬펐다. 저녁 식사시..

손주 사진에 편안함 찾고.

1월 18일통증으로 잠 한숨 못 자고 진통제를 맞는 오빠를 지켰던 지난밤은 내겐 악몽이었다. 새벽 1~2시경 시간은 모르지만, 언제 며느리가 보낸 사진인지 손주 사진을 보며 오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편안해지셨다. 음식 먹거리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자며 아침에 죽과 공깃밥이 나왔지만, 병간호를 위해서 염치없이 꾸역꾸역 혼자 밥을 먹어댔다. 그리곤 커피까지 마셨다. '오빠 밥 다 먹어서 힘 있을 때 씻어줄게' 난 넉살을 떨었다. 두 장의 수건을 뜨끈하게 적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닦고 보디로션을 바르고~ '네 덕에 호사한다.' 오빠의 최대 칭찬이다. 등줄기에 땀을 커피를 또 마시며 잠시 쉬었다. 담당과장은 영면 동의서는 오간 데 없고 CT를 다시 찍어 보자고 한 뒤 다녀가고 아이러니한 표정을 짓고 회진을 마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