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4

동생 가족 문병

1월 17일여는 때와 같았다.밤새 통증 주사 2번 맞고 잠 깨면 수면제 먹고~ 아침에 눈을 떠서 덥다며 물수건 부채질을 해달라셨다. 젖은 수건으로 이리저리 흔들어 드리곤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고 보디로션을 듬뿍 발라드렸다. 기분이 좋다며 동생이 해주는 게 신기한 듯 되묻기도 했다. '어디서 이렇게 배웠니! 고맙다.' 오빤 뜻밖에 꽈배기와 곰보빵이 먹고 싶다 했다. 이온 음료, 컵라면에 부드러운 육포까지~~식욕이 살아나는 걸까, 하면서도 먹고 싶다는데 마음이 바빴다. 잠시 후, 정신이 있을 때 가족이 다녀가는 게 좋겠다 싶어 동생 가족을 불렀다. 마침 다음 달 결혼하는 조카 딸내미의 주방 살림이 들어간다며 지나는 길에 문병을 온다고 했다.  올케에게 오빠가 먹고 싶다는 품목을 전달했다. 법무사사무실에서 근무..

휠체어에 기대

1월 16일 전기장판에 의존하면 잔 새집은 추웠다. 해서 잠이 깨신 듯, 새벽 1시 40분 부스럭 소리에 나도 잠이 깨어 담즙 주머니를 비워드렸다. 그길로 든 잠은 새벽 5시에 깨고 다시 7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힘없는 오빠 보일러가 커져 있지 않음을 알아내곤 담즙 주머니를 또 비었다. 아침도 거르고 환자용 음료를 간신히 마셨다. 어제 코로나 검사결과는 음성이어서 입원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고 작은아들에게 전화해 바쁘게 입원하러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도착 후 기운이 빠져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다. 주말, 병실은 다인실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 2인실이 나오는 데로 옮기기로 하고 1115호에 안정을 취했다. 입원절차는 급히 이뤄졌고 담당과장이 찾아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했다. 오빠 공장을 돌봐주는 ..

조카며느리 출산

1월 15일 오빤 밤새 3번의 통증 주사를 맞았다. 새벽 6시에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덮고 덮고 또 덥고 오빠의 코트까지 덮었다. 무거울 텐데도 추위가 우선이었다. 삼십여 분이 지나자 '무겁다' 추위는 호전된듯했다. 이런 상태에 퇴원해도 되는지 아이러니할 뿐이다. 잠시 후, 간호사는 내게 담즙 주머니 관리방법을 알려주었다. 오빠의 큰손자 탄생 소식에 사진이 전송되었다. 손자 사진을 보던 오빠는 ‘호중(큰아들) 닮았구나, 며느리는 건강하다느냐.’ 했다. 그리곤 바로 퇴원 준비를 했다. 삼성서울병원을 퇴원하며 집에서는 영양공급이 어려워 집 주변병원에서 입원하기로 했지만 72시간 이내에 코로나검사결과가 있어야 했다. 할 수 없이 지샘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집에서 연락을 기다리며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봉사활동을 통해 배웠어

1월 14일 십이지장이 막혀 간 수치가 올라간다. 관을 뚫어서 담즙을 빼며 황달을 잡는다? 새벽 1시, 3시 30분, 4시 30분, 6시, 6시 30분 결국, 완전한 아침은 7시 10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7시 30분 아침 식사가 전달되었다. 식사가 고통스러운 오빤 먹기 위한 의욕을 보이며 한참을 식판과 눈싸움하다가 2/5 정도의 죽을 드셨다,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두 장의 수건을 뜨거운 물로 적셔 세수해드리고 머리마사지도 하고 팔과 다리까지 닦아서 보디로션 발라드리고 발바닥도 물수건으로 닦아 각질제를 발라드려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해드렸다. 면도는 안 해봐서 못하는데, 하면 좋겠네~ 했더니 잠시 쉬더니 직접 면도도 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니?' 만족하다는 오빠의 표현이다. ‘적십자 목욕 ..

황달

1월 13일 오빠 집에 오빠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잠을 자며 아침을 맞았다. 사실 무섭기도 해서 두세 번 깬 듯했다. 남향으로 새벽부터 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제 내린 눈으로 흰 세상은 눈이 부셨다. 눈길에 조카들은 무사히 출근하는지 살짝 걱정도 하며 새집에 걸레질하며 세탁기를 돌렸다. 잠시 방마다 정리는 잘 되었는지 확인을 하며 문제점들을 조카들에게 알리고 큰조카를 맞으며 그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큰조카는 '고모가 고생이 많네요' '호중아 넌 모를 거다. 네가 3~4살 때 전자공장 하청업체를 할 당시 어음 발행으로 현금이 손에 들어오지 않아 살림의 어려움을 네 아버지가 선 듯 십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주셨단다. 지금 그 돈 가치는 많은 금액이었지. 돈을 줘도 받지도 않고 이번에 그걸 갚..

오빠 없이 집 이사

1월 12일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그냥 새벽 5시경 일어나 중요한 물건은 잘 쌌는지 다시 확인하며 내 여행 가방도 따로 싸고 7시 반경 도착한 작은 조카 차량에 내 짐을 옮겨두었다. 병원서 하룻밤을 보낸 남편은 이삿짐 옮기면 바로 김해 내려간다고 보채는 전화가 왔다. 누워계신 오빠 옆에서 뭐라도 할 일이 없어 좀이 쑤셔 못 있게 다는 게 남편의 말이다. 간병을 해본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출근 차량에 막내올케도 일찍 와주었다. 이삿짐 차량이 오면서 오빠 없는 집 이사는 내 가슴에 서운함만이 몰려왔다. 오빠 친구 두 분(용국, 종석)도 이른 시간부터 오셔서 나를 응원해주었다. 난 오빠 없는 친구 두 분 오빠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삿짐은 추위 속에 옮겨지고 군포 공장 부근에 얻은 ..

적십자 후원 금장 유공장, 두 번째 스텐트 시술

1월 11일 지난밤 남편과 오빠 집에 올라와 잠을 자며 병원에서 조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통에 시달리던 오빠가 죽고 싶다고 하고 간병인 쓰고 아들마저 가라고 호통을 치셨다며 연락을 주었다. 난 '고모가 네 아버지에게 도움 드리려 적십자봉사도 탈퇴하며 와있는데 왜 그런 약한 소리를 하냐 네 아버지 집 이사로 고모 대신 낼 고모부가 병원 가고 이사 뒤에 고모가 간다고 약한 마음 먹지 말라고 해라.' 조카에게 울분을 터트렸다. 오빤 어느샌가 나를 의지하고 있었고 남편이 간다는 말에 남편의 수고가 싫어서 한 말이란 걸 내가 모르겠는가. 그렇게 남편과 오빠 집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으며 남편은 오빠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난 내일 이사하는 오빠 집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오빠 방에서 낯익은 상장을 발견했다..

혼자정리

1월 9일 오늘 오빠 간병하는 것을 큰 조카와 교대하기로 했지만, 소소한 것들을 치우기 위해 교대 못하고 종일 치우고 싸고 집안정리를 했다. 큰 조카는 출산을 앞둔 조카며느리를 친정에 보내고 병원을 지키기로 했다. 난 3일 뒤에 이집의 쥔장 없이 혼자 이사를 해야 하기에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삼시세끼도 다 차려먹었다. 오빠 침대덮개, 파자마, 이불 등도 빨아 정리를 해두었다. 혼자 이방 저 방을 살피며 주방 쪽을 더 정리하며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기도 했다. 다 늦은 저녁, 쓰러지듯 거실에 누워 TV 속 대중가요를 보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