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4

대성통곡

1월 8일 오빤 밤새 지친모습이 영역했다. 오빠의 통증은 ‘지난번 삽입한 스탠드까지 암이 생겨 오빠를 괴롭힌 것 같다’며 ‘날이 밝으며 스탠드를 다시 삽입합시다.’가 답이었다. 보호자로서 비좁은 응급실 의자에서 밤을 새우며 오빠의 착잡한 심정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실이 없어 날이 밝아도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다. 어제 저녁도 못 먹은 날 위해 아침밥을 먹고 오라는 특명을 받고 당당히 먹고 오겠다, 말하며 식당으로 향해 순두부백반을 먹었다. 통증으로 식사를 할 때면 밥을 앞에 놓고 ‘이건 먹는 게 아니고 퍼 넣는 거다,’ 라고 말했었다. 나도 그런 심정이다. 간병을 위해서 내 체력도 지치면 안 되기에 나도 퍼 넣었다. 곧 이사 가는 일로 짐정리를 위해 낮에 조카와 교대를 하며 올케를 불러 오빠 집으..

결국 응급실 찾아

1월 7일 거실 밖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지난밤에 찍은 자리에서 설경을 또 찍어보았다. 하얀 눈은 깨끗하고 마음까지 정화되듯 상쾌했다 오빤 무슨 일인지 분주했다. 한참 뒤에 화장실 가기가 어렵다했다. 주방정리를 하며 버려도 되는지를 묻자, 묻지 말고 그냥 버리란다. 점심수저를 놓고 냉장고 두 대를 청소했다. 오빤 엄동설한에 갑자기 나가자고 했다. 눈 쌓인 서울 길을 어찌 가려고~ 오빠의 체력으로 난 간병인으로 따라가는 거지만 운전까지 오빠가 하신다고 했다. 저 힘이 어디서 나는 걸까? 대표이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 힘을 쏟는 듯했다. 난 그저 참아내는 모습에 눈물만이 흘렀다. 오후 공장을 다녀 온 오빤 구역질을 했다. 겁도 났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며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로 입원준비를 하..

아직 할일이 남아서~~~

1월 6일 오빤 전복죽으로 식사하며 동치미보다 나박김치를 먹고 싶다 했다. 조카들이 반찬가게서 사서먹는 파김치에 젓가락이 갔다. 천천히 아주 오래 위를 다스려 가며 식사를 하신다. 식사 중에 아침 8시 큰조카가 출근 전 방문했다. 공장 일을 보고하고는 질부출산일을 이야기 했다. 15일 오전 8시30분 제왕절개 수술 날짜가 잡혔다. 무슨 이런 일이 있는지....... 보고를 마치고 출근하며 하는 말 '고모 손자는 보실 수 있겠죠?' '그럼 아버진 강한분이니까 걱정 말거라.' 나도 슬픈데 큰 조카가 걱정 섞인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조카를 보내고 마트에서 나박김치 재료와 쪽파를 나왔다. 내가 담근 나박김치와 파김치를 다 드실 수나 있을까! 순간 ‘견디기 힘들다며 입원해야겠다,’ 며 서둘렀다. ‘이제 집에 못..

또 다시 간병으로 오빠 집에 오르며

1월 5일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 잠을 설쳤다. 새벽임에도 부지런한 남편 탓에 남편의 배웅으로 구포역에 새벽 6시10분에 도착했다. 어제 조카로부터 받은 전화는 더 이상 병원입원마저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오빠 심정은 어때 을까! 암이란 게 정신은 멀쩡하고 먹지 못해 말라가며 통증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는데 오빤 마지막 고리라도 잡고 싶어 입원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받아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오늘 오르면 난 할일이 많을 걸 안다. 간병과 오빠 집 이사 그리고 오빠 큰 며느리, 내겐 조카며느리인 영애가 출산을 한다. 또 작은조카도 한주 뒤에 이사를 하고, 두주건너 오빠공장 이전~ 어찌 이런 일이 이렇게 겹칠까............. 새벽추위를 국밥으로 달래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대합실에 올랐다. 코로나..

울적한 마음 달래며

1월 2일 오늘 오빠 집에 오르기로 했지만, 오빠의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연락을 조카로부터 받았다. 조카와 통화로 난 화요일 새벽에 오르기로 하고 밀린 잠을 잘 예정이었다. 남편은 심란해하고 우울해하는 날 위해 운전대를 잡아주었다. 울산으로 밀양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울산 4,580m로 제법 긴 가지산 터널을 지나 꼬불거리는 가지산 도로 산내로를 돌아 가장 높은 곳에서 저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았다. 표충사 뒷길 도래지 비탈진 길을 내려 밀양 이팝나무길 시골길도 다녔다. 밀양 석남사까지 한 바퀴를 돌아주었다. 화요일 올라가면 바로 내려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아는 남편은 내 마음을 위로해주려 노력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남편은 심란해하는 나를 위해 저녁에 지인을 초대해 떡국을 끓여..

2021 새해 아침

1월 1일 새해를 알리는 사진과 연하장이 톡을 통해 날아들었다. 동생도 아파트에서 찍은 새해 해맞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들 부부는 하룻밤을 보내고 대전으로 올라가야 했다. 새해맞이 떡만 두 국을 끓여 먹고 어젯밤에 만든 간장게장을 싸서 올려보냈다. 새해라는 이유로 직장 일에 쫓기면서 무리하게 내려온 아이들이었다. 같이 있으면야 좋지만 나도 피곤했다. 공휴일 연휴 아이들도 푹 쉬라며 올려보내고 쏟아지는 잠을 늦은 저녁까지 잤다. 남편은 그런 날 깨우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보니 대전에 오르는 아들은 엄청난 눈이 내린다는 영상이 카톡으로 날아들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 남편에게 어제 담은 간장게장과 저녁 식사를 해드렸다. 다행히 간장게장은 맛이 있었다.

2020 마지막 밤을 보내며

12월 31일 아침에 견과류 죽을 준비해 두었다. ‘오빠 나, 김해 내려가면 뭐해 놀까?’ ‘김치찌개 해놓고 가렴.’ 지난밤 오빠께 물어보고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끓였다. 다행히 아침에 견과류 죽 대신해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드셨다. ‘곧 큰며느리가 손자를 놓고 백일이 지나면 오빠 생일이네, 오빤 강하니까 그때까진 끄떡없을 거야 그래야 나중 하늘나라에서 언니를 만나도 손자 이야기할 수 있잖아. 김해 내려 갔다 올게.’ 인사를 했다. 오빤 나보다 먼저 힘없는 다리를 끌고 공장에 주문한 기계가 완성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친구와 보러 나가셨다. 이곳 안양에는 오지 않은 눈이 수원역을 지나가는 기차에 하얀 눈이 묻어있었다. 신탄진까지 가는 무궁화 열차에 올라 천안을 지나자 언제 그쳤는지 하..

울 오빠 어찌하면 좋을지…….

12월 30일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부터 깨어있던 나는 견과류 죽을 준비했다. 오빤 지난밤 더 기운 없어 했다. 6시 20분에 이른 아침을 먹자며 아침을 서둘렀다. 기운을 내보려고 조심스레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힘겹게 돌려도 본다. 호두와 찹쌀을 갈아 죽을 끓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힘없이 죽을 퍼먹었다. 오빠 이겨보려 퍼넣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숭늉을 끓여 보온병에 담고 환자용 음료도 담고 작은 조카에 의해 병원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실타래의 희망을 품어보며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병원을 갔다. 건강의학과(11시 40분), 혈액종양내과(14시 40분) 건강가정과 암 치유센터 신동욱 교수 쪽에선 별다른 말이 없이 오빠 상태만 묻고 그에 대한 처방 약만 주고 더 붙이는 말은 암 치유센터를 오게 ..

오빠와 걷기

12월 27일 일요일, 평소 같으면 산악대장으로 친구들을 인솔하고 친구들을 기다릴 터인데 오늘은 산악부대장 친구가 산에 가기 전에 오빠를 찾아왔다. 나도 잘 아는 우리 때 말했던 오빠의 국민학교 동창이다. 그 오빤 여동생이 간병을 한다는 소식에 ‘친구 돌봐줘서 고맙다, 수고한다.’며 투박한 손으로 포장한 화장품을 전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오빠기에 당연한 일인데 오빠친구가 고맙다 했다. 산에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마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빠랑 걸었다. 오빠 집은 1월 12일 이사, 큰며느리 출산예정일은 1월 14~5일경, 작은아들 이사 1월 21일, 공장 이전은 1월 25일경부터 3개월을 잡았다. 오빠 집은 2018년 연말에 큰집에 혼자살기 외롭다고 이사를 결정하고 9월말 경 집이 팔리게 되었고 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