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440

손자 방문

1월 22일세종시에서 아들은 며느리 출산 후, 안전운전으로 손자와 김해에 첫 방문을 했다. 다음 주 손자 백일이어서 굳이 오지 말라고 말을 했지만, 내일이 시어미인 나의 생일인 관계로 생후 3개월 된 손자를 데리고 아들 며느리가 내려온 것이다. 난 마음이 바빴지만, 내가 좋아하는 뼈다귀탕을 준비해두었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LA갈비를 준비해놓은 상태로 다른 건 손에 아무것도 잡히진 않았다. 지난밤 온다는 말은 손자를 병원에 다녀온 터라 오늘 찾아왔다. 다행히 별 이상은 아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바뀐 거 중에 하나도 백일잔치일 것이다. 예전과 같이 집안 어른들과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던 백일잔치는 하지 않고 가족끼리 밥만 먹는다고들 했다.우리 아들, 며느리도 사돈댁과 집에서 간단하게 한다고 소식을 ..

뼈다귀탕

1월 22일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친구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글쎄 무얼 먹을까? 그냥 귀찮기에 난 ‘아무거나 먹자.’ 했다. 친구는 나의 식성을 알기에 등뼈찜을 권하며 앞장서 나를 안내했다. ‘그럼 그러든가~’ 친구가 안내하는 데로 핸들을 잡으며 도착했다. 친구는 나에겐 육개장을 시켜주고 친구는 등갈비찜을 시키며 반씩 나눠 먹었다. 육개장을 2인분 포장까지 해올 정도로 두 가지 음식이 내 입에 맞았다. 음식점을 나오며 문득 주말 손자를 놓고 처음 방문하는 아들, 며느리를 위해 뼈다귀탕을 해줄 생각에 주촌 축산물 도매시장을 찾았다. 구정을 앞두고 선물을 사려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북적거리는 상가 내에 내가 있어 좋았다. 며느리가 LA갈비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주문한 갈비는 화요일쯤 도착 예정으로 내..

손자 청바지

1월 17일남편 쉬는 날, 참 추웠다.산에도 가지 않은 남편에게 드라이브 삼아 바닷가를 들려 부산진시장을 가자고 했다. 집을 나서며 얼마를 달렸을까,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변덕이 죽 끓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남편은 잔소리하지만 당연했다. 그냥 진 시장까지 갔지만, 진 시장 옥상 주차장의 공사로 주차를 하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돌아야 했다. 진 시장을 간 이유는 백일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손자의 청바지를 만들어 주려고 청바지 원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신혼 초 심심풀이로 바느질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해서 손자 바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남편은 나와 손자를 위해 나온 길이기에 귀찮은 것도 감수하며 돌아 주차했다.그러는 중에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며 짜증을 내고 말았다. 정말, 별..

종손자 돌

1월 15일서울을 가기 위해 새벽 6시 알람에 의해 눈을 떴다. 다음 달 15일이면 오빠의 1주기가 된다. 즉, 2021년 2월 말 고인이 된 친정 오빠의 손자 돌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가야 했다. 지난 일 년은 내가 견디기 힘든 한 해이었다.그런데도 연이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며 지금껏 맘고생에서 헤매고 있기도 하다.그런 중에 봉사단체장도 맡으며 그냥 형식으로만 걸치고 있는 셈이다.무너지려는 맘을 부여잡고 버티며 일어나려 애쓰고 있다. 구포역에 도착해 ITX 새마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내에서 일상을 쓰고 있다.ktx 열차의 갑작스러운 결함으로 옮겨 탔기에 복잡할 거라는 예상은 나 혼자 생각이었고 기차 내는 한산했다. 어느덧 경산 역이란다.허리 협착증으로 장시간 타는 건 무리기에 앉았다 섰다..

나는 누군가?

1월 13일 수상 안전요원으로 난 수영장 근무를 선다. 단, 2시간이지만 그 시간만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제로 밖을 나서며 집에서 역시, 특별한 일이 아니면 두문불출하고 있다. 출근하는 머리는 복잡한 상태로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 묻기도 한다. 생각할수록 더욱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으며 복잡해진다. 노트북 챙기고 사진 찍으며 여행도 가고 싶지만 어려운 상황, 코로나로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오늘 근무 중, 수영회원으로부터 '무슨 일로 힘들어하냐'는 위로를 받았다. 내 블로그 글을 보는 회원이었다. 왠지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나를 지켜보는 이들을 위해 방황은 끝을 내야 했지만,........... 내가..

방황은 언제까지?

1월 11일 지인 형님들과 점심 약속이 되어있었다. 병원을 다녀오며 약속 시각 정각에 도착이 되었다. 바람은 몹시 불어댔다. 울적한 마음으로 그녀들을 만나 수다라도 떨면 위로가 될까, 약속장소에 나갔지만, 그녀들은 20분이나 늦었다. 늦는 다는 전화도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머리에 쥐가 나려는 듯,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기까지 했다. 최근 나의 변화가 그리 만든 것이다. 도착 즈음에 연락이 닿았고 생선구이는 주문한 상태여서 도착에 맞춰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인내(忍耐)하며 그녀들과 배 둘 레를 채웠다. 그녀들은 돌아갔고 난 핸들을 잡고 그냥 달렸다. 언젠가 남편과 친구와 다녀왔던 밀양인듯했다. 도로는 한적했다. 거센 바람은 작은 나의 귀요미를 삼킬 듯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도롯가에 차를 세우고..

맘속 빗장

1월 7일 남편 쉬는 날, 점심으로 생선초밥집을 찾으며 단지를 걷게 되었다. 겨울이 한참인 중에 영산홍이 피었다. 봄은 오려면 아직 멀었건만, 아파트 단지에는 계절 모르는 영산홍이 꽃을 피웠다. 해마다 단지 내의 영산홍은 제멋대로 피는 것 같다. 추운 겨울에도 잠시 따뜻한 태양에도 어김없이 분홍빛 꽃을 피우며 지고 봄을 맞이하곤 했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 병원까지 찾으며 링거액 도움을 받기도 했다. 내 맘속 빗장의 문도 열어야 하건만 언제가 될지, 나도 모르겠다.

못났던 2021년 아~듀

12월 31일 다사다난?  글쎄~! 나에게는 적절한 대목이다.  슬픈 일 기쁜 일들이 연이어 내 주변을 맴돌아 그 일 처리에 바빴던 한해였다. 기쁜 일은 금방 잊히지만 슬픈 일은 머릿속과 가슴속 깊이까지 잠재하여 우울증까지 겪어야만 했다.  2021년 초에 친정 오빠의 암 투병으로 3~4개월 병간호를 하며 손길 하나하나에 쾌유를 기원했으나 오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먼 여행길을 떠나는 가슴 아픈 사연을 맞게 되었다.  지난해에 결혼한 아들 며느리의 사랑으로 손자 리한이가 태어나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에 이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코로나 19로 왕래가 어려운 상황인지라 세상이 변화되어 신기술 IT 핸드폰 영상통화로 아들 며느리와 번갈아 가며 손자 녀석의 옹알이하는 모습에 심취에 빠져보기도..